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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돈줄’ 끊으려다 우리 ‘팔ㆍ다리’만 자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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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돈줄’ 끊으려다 우리 ‘팔ㆍ다리’만 자르나

입력
2016.0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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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개성공단에서 가져온 화물을 직원들이 자유로 끝지점인 임진각 입구에서 하적해 다른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개성공단에서 가져온 화물을 직원들이 자유로 끝지점인 임진각 입구에서 하적해 다른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남북관계 단절을 감수하고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내린 데 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돈줄’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뼈를 깎는 노력이라거나 팔 다리를 자르는 심정이란 말로 불가피한 결단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무기개발에 전용된 구체적 근거가 빈약하고, 경제적 타격도 북한이 아닌 우리 기업들이 훨씬 커 사실상 대남 제재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정부가 선제적 폐쇄 조치에 나서면서 남북 간 맺은 공동 합의 파기와 위법 논란까지 겹쳐 북한이 도리어 큰 소리를 칠 우려가 커지는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중국 유입 풍선효과 간과, WMD 전용 근거도 빈약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에서 북한에 유입된 현금이 대량살상무기(WMD), 즉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는 데 쓰였다는 점을 내세워 개성공단 폐쇄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홍 장관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 누구도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정부가 유일하게 내놓는 근거는 불투명성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북측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매 달 임금을 일괄 전달하면, 총국이 45%를 떼고 나머지를 북측 근로자들에게 나눠준다. 간접 지불 형태인 만큼 온전히 전달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11일“기업들이 준 월급을 통째로 챙겨 김정은이 무슨 명목으로 쓸지는 아무도 모를 일 아니냐”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는 5만 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의 생계유지 비용을 무시한 계산법이란 지적이다. 북측 근로자들은 달러에서 환전된 북한 원화 외 물품 교환권을 따로 지급받는 등 노동의 대가를 챙기고 있다. 김정은의 쌈짓돈으로 전용됐을 것이란 우려는 그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 등 인도적 목적을 이유를 들어 개성공단을 유지시켜온 우리 정부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설사 김정은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해도 연간 인건비 1억 달러에 그치는 개성공단 자금을 끊는 것만으로 북한의 핵 개발 야욕을 꺾을 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대외무역 규모로 벌어들이는 금액은 연간 80억 달러에 달하는 만큼 개성공단 폐쇄로 입힐 수 있는 손실은 미미하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경우 공단 조성 및 투자 비용 등을 합치면 피해액이 1조원에 달할 정도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개성공단 근로자가 중국으로 유입될 경우 발생할 풍선효과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개성공단 근로자가 중국에 파견되면 현재보다 두 배 이상의 임금을 받아 더 많은 현금이 북한에 들어간다”며 “정부가 결과를 충분히 숙고하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남북 합의 위반, 법적 근거 부재 논란도

정부가 2013년 북측의 일방적 폐쇄 통보로 촉발된 개성공단 중단 사태 당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는 정상화 합의를 파기한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당시 합의 문구는 우리 정부의 주도로 작성됐다. 정부 당국자는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건 단순히 정세 차원을 넘어선 근본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북측은 이를 빌미로 합의 파기를 주장하며 우리 정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경제협력 사안은 국제법상 조약에 해당되는 만큼 개성공단 폐쇄는 일방적 파기 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재산권을 박탈 당한 우리 기업들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란 점에서 위법 논란도 불거진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지만 정부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익목적을 위한 행정적 행위”라고 밝혔다. 정부가 남북경협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려 향후 기업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명분이 좁아진 것도 개성공단 폐쇄가 남긴 후유증이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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