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말은 대부분 기존에 있던 말을 근거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언뜻 보면 뜬금없이 만들어진 말 같지만, 그런 말의 출처를 찬찬히 따져 보면 우리가 쓰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내 말에 유난히 맞장구를 치는 여자를 보면서, 그녀가 내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끼병에 걸렸나?” 나는 이 문장에서 ‘도끼병’이란 말을 처음 접했지만, ‘도끼병’의 뜻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네이버의 ‘대중문화사전’에는 ‘도끼병’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찍었다고(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병으로, 공주병 또는 왕자병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로 풀이되어 있다. 내 짐작이 얼추 맞았다.
이 말을 만든 이는 ‘찍다’라는 말에서 찍는 도구인 ‘도끼’를 연상한 후 ‘도끼병’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도 ‘누군가를 지목하다’란 뜻의 ‘찍다’가 ‘도끼로 무언가를 찍다’의 ‘찍다’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하면서 ‘도끼병’을 받아들였을 터. 게다가 우리는 ‘여러 번 유혹하거나 권유하면 사람의 마음이 바뀌기 마련임’을 ‘열 번 찍어 아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유혹하거나 권유하는 행위를 도끼로 찍는 행위로 비유하는 게 자연스럽다면, ‘도끼병’은 우리의 언어 관습이 잘 녹아 든 낱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연상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무를 도끼로 찍다”의 ‘찍다’에서 “그를 신랑감으로 찍다”의 ‘찍다’를 연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국어사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선 ‘찍다’의 두 의미를 관련지어 한 낱말의 다의로 본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의미를 별개의 동음어로 봤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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