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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올림픽의 정치

입력
2016.08.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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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4관왕에 오른 미국의 흑인 육상영웅 제시 오웬스는 귀국 후 백악관 대통령 접견을 거부당했다. 재선 유세 중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지역의 표를 의식해서였다. 당시 히틀러는 금메달 수상자들을 불러 악수하며 축하했으나 오웬스와는 악수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오웬스는 “히틀러는 나를 모욕한 적이 없다. 나를 모욕한 건 미국의 루스벨트였다”고 일갈했다. 히틀러가 그와 악수하지 않은 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만류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랍민족의 생존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청년들입니다. 아직도 방황하는 민족이 있음을 알려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올림픽을 즐길 눈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어줄 귀는 없습니까.” 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다 결국 이스라엘 선수 11명 전원을 살해한 ‘검은 9월단’ 테러리스트들의 증언이다. 이들은 아랍권의 참패로 끝난 6일 전쟁 뒤 이집트, 요르단이 미국 주도의 평화협상에 참여하려 하자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올림픽을 선전장으로 삼았다.

▦ 67년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OPHR)’라는 단체 결성을 주도한 미국의 해리 에드워즈 대학 강사는 이듬해 열린 멕시코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 “몇 명의 흑인 선수를 이용해 스포츠가 인종 정의의 요새인 양 칭송받게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서는 기어 다닐 텐데 멕시코에서는 왜 뛰어야 하는가.” 올림픽 보이콧은 관철되지 못했지만, 200m 달리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의 두 흑인 선수가 시상대에서 펼친 ‘검은 장갑’ 퍼포먼스는 흑백차별이 극에 달했던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 이번 리우 올림픽 참가국은 206개지만 참가 팀은 207개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난민팀(ROT)의 선수 10명은 바닥권 성적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올림픽이 정치색을 배격한다지만 난민팀의 참가 자체가 가장 적극적 정치행위다. 우리도 런던 올림픽에서 축구선수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중국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의 백두산 세리머니 등 ‘스포츠 정치’에 낯설지 않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핏자국과 흙먼지에 뒤덮인 채 극적으로 구조된 5세 남자아이의 표정 잃은 얼굴을 보며 올림픽과 정치의 딜레마를 새삼 느낀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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