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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심판’에게 주어진 마지막 부활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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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심판’에게 주어진 마지막 부활 기회

입력
2015.09.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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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심판이 되다 ④] 10년 만에 다시 걷는 심판의 길

축구심판에게 꾸준한 체력관리는 필수다. 선수에 버금가는 심판의 활동량이지만 힘들다고 선수처럼 수시로 교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축구심판의 체력테스트(▶ 이전기사 보기)가 타 종목에 비해 힘든 것도, 이 테스트를 1년에 한 차례씩 반드시 통과해야만 자격이 유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심판 자격은 가차없이 정지된다. 한 해 동안 심판으로 활동을 할 수 없고, 자연히 승급심사도 불리해진다.

기자가 10년째 3급 심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불량 심판’이다. 2006년 합격 이후 갖가지 이유로 체력테스트를 치르지 못하다가 2009년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심사를 통과해 2010년까지 자격이 유지가 됐다. 이후 2010년부터 또 체력테스트에 불참, 그 뒤로 4년여 동안 자격 정지 상태였다. 문제는 정지 상태로 만 5년이 지나면 자격이 말소된다는 점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나 지난 9년여 간 심폐소생술 하듯 근근이 자격 박탈만 면해왔던 셈이다.

● 보람찬 2박 3일, 결과는요…

‘불량 심판’은 2014년 11월 8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4 하반기 리텐션코스(비활동 심판원들의 자격 회복 위한 체력테스트)를 첫 번째 부활의 기회로 삼았다. 사실 울산을 향하는 길은 신이 났다. 휴가를 더해 2박 3일의 일정을 짤 수 있었는데, 대구 부산 울산 등 남부지역에 직장을 잡은 친구들에게 “한 번 시간 내서 가겠다”고 던져 왔던 약속들을 지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의 일정이었지만, 왠지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면 더 힘이 날 것 같았다. 11월 6일부터 시작된 2박 3일의 ‘남부 투어’는 첫날부터 빡빡했다. 서울에서 직접 차를 몰고 경기도 수원의 회사동료의 집에 들른 뒤 대구로 넘어가 친구를 만났다. 이곳에서 대구의 명물 찜갈비에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 부산 해운대로 이동해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캔을 들이켰다.

이튿날엔 K리그 부산 구단의 클럽하우스에 들러 구단 관계자들도 만났다. 예정에 없던 선수와의 인터뷰까지 성사되니 먼 길 내달려온 보람도 있었다. 오후엔 부산지역 방송사에 입사한 후배와 오랜만에 조우했고, 저녁엔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의 수산센터에서 체력테스트의 합격을 기원하며 장어를 구웠다. 밤늦게야 결전지 울산에 도착해 친구 집에 짐을 풀었다. 수년 만에 만난 친구와 ‘치맥’을 나누며 풀어내기 시작한 수다는 새벽 2시가 다 돼야 고단함에 밀려 끝이 났다. ‘결전의 날’ 아침엔 오전 10시부터 예정된 체력테스트를 위해 푸짐하고 맛 좋기로 유명하다는 백반집을 찾아 든든히 배를 채웠다. 드디어 ‘남부 투어’ 마지막 일정인 체력테스트. 이틀간 만난 친구들의 응원과 찜갈비, 장어, 백반의 기운까지 품고 울산종합운동장의 스타트라인에 섰다.

지난 5월 울산종합운동장. 대한축구협회 직원들이 심판 리텐션코스 체력테스트를 위한 최종 점검을 실시 중이다. 김형준기자
지난 5월 울산종합운동장. 대한축구협회 직원들이 심판 리텐션코스 체력테스트를 위한 최종 점검을 실시 중이다. 김형준기자

결과는 처참했다. 제한시간 내에 150m 러닝과 50m 워킹을 14세트 반복(400m 트랙 7바퀴)하는 인터벌 테스트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체력은 4바퀴째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믿었던 정신력은 5바퀴째에서 바닥났다. 결국 11번째 세트에서 탈락했다. 울산까지 헛걸음 한 셈이었다. 홀로 차를 몰아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피로도 피로지만 뒤늦게 밀려온 후회를 주체할 수 없었다.

지난해의 실패 경험을 굳이 나열한 데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게 잘못됐다. 반가운 이들을 만난 거야 좋지만, 다른 일정에 밀려 체력테스트 준비가 전혀 안 된 탓이다. 운전의 피로도, 체력테스트 전날까지 이어졌던 음주, 부족했던 수면, 매 끼니 무거웠던 식사까지 체력테스트를 위한 준비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체계적인 준비도, 간절함도 부족했다. 준비라고 해야 취미로 해온 풋살(미니축구)과 사회인 야구로 꾸준히 운동 감각을 잃지 않은 정도였는데, 사실 2006년 첫 체력테스트 합격 이후 2009년에도 ‘깡으로 악으로’ 붙었던 기억이 있어 현재의 체력에서 이 악물고 뛰면 합격 가능할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었던 듯하다. 원인은 분명했다. 자만이었다.

● 버리니 비로소 보인 합격

탈락의 후유증은 컸다. 당장 회사에선 울산까지 가서 떨어지고 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지며 놀림감이 됐고, 12월에는 남부 투어 기간 동안 긁고 다닌 카드 빚에 치여 어느 때보다도 추운 연말연시를 보냈다. 무엇보다 자칫하면 심판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겨울이 추웠던 만큼 새봄을 맞는 각오는 남달랐다. 지난 5월 17일, 2015 상반기 리텐션 코스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울산으로 향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비활동 기간이 만 5년을 넘기게 돼 심판 자격이 말소돼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실패를 거울삼아 3월부터 꾸준히 러닝과 축구를 겸하며 체력을 끌어올렸다. 러닝은 기본 체력 향상을, 축구는 인터벌 테스트 적응을 도왔다. 테스트 1주일 전부터는 음주도 최대한 자제했다. 무엇보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울산행 여정에 어떠한 다른 일정도 넣지 않았다. 마음이야 직접 운전해 가고 싶었고, 울산의 친구와 또 한 번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싶었지만 오로지 합격만 바라보기로 했다.

운전 대신 버스를 이용했고, 숙소도 친구 집 대신 울산 버스터미널 인근의 준수한 숙박업소를 택했다. 피로를 줄이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다. 식단도 마찬가지. 체력테스트 하루 전엔 소화에 부담 없는 두부 요리를, 테스트 당일 오전엔 바나나와 적당량의 수분만 섭취해 최대한 몸을 가볍게 유지했다.

심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꾸준한 체력관리가 필수다. 지난 5월 체력테스트를 마친 기자의 모습
심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꾸준한 체력관리가 필수다. 지난 5월 체력테스트를 마친 기자의 모습

참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과는 보람 있었다. 스프린트를 통과한 뒤 이어진 인터벌 테스트에서 전 구간을 무난히 통과해 합격했다. 위기는 있었다. 총 14세트의 러닝의 절반 가량을 지날 때까지 같은 조 8명의 지원자 중 5명이 탈락했다. 동료의 탈락에 부담이 컸지만 남은 지원자들은 서로를 독려하며 마지막 구간까지 온 힘을 다했다.

이날 지원한 120명의 도전자 중 부활의 기회를 얻은 이는 36명. 전체 합격률은 30%다. 한 주 전 충남 천안에서 열린 리텐션코스 합격자까지 합하면 총 107명의 심판이 자격을 회복했다. 2015년 9월 현재 대한축구협회 등록 심판은 총 7,765명. 이 중 활동심판은 22.5%에 해당하는 1,745명이다. 나머지 77.5%의 비활동 심판에 대한 기회는 올해 하반기에도 열린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리텐션코스는 당초 심판 자격 획득 후 군 입대나 해외 유학 등으로 자격을 이어가지 못한 심판원의 자격 회복을 위한 과정이었지만 현재는 자격이 정지된 모든 심판원에게 부활의 기회를 열어뒀다”며 “심판원의 안전을 위해 체력테스트가 보다 엄격한 기준 하에 이뤄지는 만큼 꾸준한 체력과 컨디션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대한축구협회 3급심판

[영상] 심판 체력테스트는 어떻게 진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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