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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의 짜고 치는 고스톱

입력
2015.10.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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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마치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미 해군의 9,200톤급 구축함이 중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남중국해 인공 섬의 12해리 안으로 진입하자 중국군은 곧 바로 군함 2척을 출동시켜 바짝 뒤쫓았다.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뿐 이었다. 우려했던 군사적 충돌은 없었고 이후 상황은 수습 국면이다. 더구나 미 정부는 이번 작전에 대해 아무런 공식 발표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인공 섬을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중국도 신성한 영해를 외국의 군함이 무단 침범한 만큼 단호하게 대응하는 게 정상일 터인데 외교ㆍ국방부가 대변인 성명을 내 놨을 뿐 더 이상의 물리적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거품을 물었을 중국 관영 매체들도 “미 군함을 종이호랑이로 간주하자”며 예상 밖의 태연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미중의 태도는 사전에 치밀하게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했다.

미중 두 나라가 이미 지난달 해상과 공중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중대 군사 행동 시 사전 통보로 위기를 막자는 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해 준다. 미중이 사전에 협의를 한 뒤 ‘위기’를 연출했을 개연성이 높다.

더욱 눈 여겨 볼 대목은 양국의 행보엔 앞 뒤가 안 맞는 모순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미중 모두 법을 내 세우고 있는 것 같지만 근거가 약하다. 먼저 중국의 경우 바다 위의 산호초를 메워 영토로 만드는 행위는 국제법 상 인정받을 수 없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만조 시 바다 속에 잠기는 암초는 영토가 아니다. 인공섬과 시설 및 구조물은 섬이 아닌 만큼 자체의 영해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산호초를 메워 인공 섬을 만든 뒤 이를 영토로 간주, 12해리 안은 영해란 주장은 억지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인공 섬 건설을 용인할 수 없다는 미국의 지적도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와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ㆍ연안국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경우 영해라도 통과할 수 있는 권리)을 내 세웠지만 무해통항권 역시 유엔해양법 협약 상 보장된 권리다. 이미 전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항해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유엔해양법협약이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듯 하다. 그러나 자신은 준수할 의지도 없는 법을 다른 나라에게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고 설득력도 없다.

미중의 남중국해 행보는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국제법과 상관없이 모순된 행동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중국은 해양대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해상 실크로드)의 출구인 남중국해부터 앞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남중국해를 내 줄 경우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과 세계 최강국 지위에 손상을 입게 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냔 일부 동맹국의 의구심도 해소해야 했다. 그러나 양국 모두 직접 충돌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미중이 서로 엄포만 놓은 채 평행선을 달리며 대치전만 벌인 배경이다.

이번 남중국해 사태는 그 무대를 한반도로 옮겨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미중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 통보 체제를 구축한 만큼 한반도에서 양국간 오판으로 인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 줄어든 것은 다행스런 대목이다. 그러나 미중이 우리를 배제한 채 한반도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점은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미중이 한반도에서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칠 가능성도 없잖다. 우리는 미국과 친하게 지내고 중국과도 손을 잡아야만 한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우리의 이익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결국은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길 밖에 없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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