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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인종차별주의자를 존경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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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인종차별주의자를 존경해야 할까

입력
2015.12.2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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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달 프린스턴대학에서 실천윤리학 강의를 하고 있는데 몇몇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들은 흑인정의연맹(BJL)이 이끄는 수백 명의 시위대에 합류했다.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마이클 브라운이 총격으로 숨진 데 이어 경찰이 비무장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살해하는 일이 이어지자 미국 전역에서 생겨난 많은 학생 단체 중 하나가 BJL이다.

BJL 회원들은 그날 이후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충족되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며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루버 프린스턴대학 총장 사무실을 점거했다. 요구 사항은 ▦교수진과 교직원은 ‘문화적 역량 연수’를 받을 것 ▦학생들은 소외계층 역사 수업을 필수로 들을 것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를 위한 캠퍼스 내 ‘문화적 친화 공간’을 마련할 것 등이었다.

교내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정책대학원과 기숙제 대학 중 하나인 윌슨대학의 이름을 바꾸라는 요구는 전국적 관심을 받았다. BJL은 대학 식당에 있는 커다란 윌슨 벽화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윌슨은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를 기리는 건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에게 모욕적이라는 주장이다.

지난달 프린스턴대학 총장실인 낫소홀 점거를 이틀만에 끝내고 나온 학생들. 프린스턴대학 블로그 사진
지난달 프린스턴대학 총장실인 낫소홀 점거를 이틀만에 끝내고 나온 학생들. 프린스턴대학 블로그 사진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28대 대통령은 국내 문제에 진보적이었고 외교정책에선 이상주의자였다. 윌슨 정부는 은행법을 개혁하고 독점과 싸웠을 뿐 아니라 미성년 노동을 막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노동자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했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남아있던 당시 그는 외교정책이 도덕적 가치관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럽의 민주주의와 민족 자결권을 지지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정책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1913년 대통령이 됐을 때 그는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고용한 연방정부를 이어받았다. 일부는 중간관리직으로 백인들과 나란히 근무하고 있었다. 윌슨 정부는 남북전쟁 종전 때 철폐했던 인종 분리 사무실과 화장실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관리직들은 낮은 지위로 강등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표단이 항의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인종 분리를 혜택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윌슨의 이름이 프린스턴대학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건 그가 이 대학 출신(이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어서만이 아니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 프린스턴대학 총장이었고, 전 우드로 윌슨 스쿨 학장이었던 앤 마리 슬로터의 말처럼 “프린스턴대학을 부유한 사립고 출신 신사들의 전유물에서 훌륭한 연구 대학으로 탈바꿈시키는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평화 조약의 기초가 된 14개 조항으로 전 세계에 유명하다. 그는 폴란드의 독립뿐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 여러 민족들의 자치권을 요구했다. 바르샤바에 윌슨 광장이 있고, 프라하의 중앙역이 윌슨역이며 프라하와 브라티슬라바에 윌슨 거리가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14개 조항에는 전후 다른 나라의 영토를 몰래 나누려는 비밀조약 없는 공개 서약과 무역장벽 축소를 요구하는 내용이 있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모두가 정치적 독립과 영토 보전을 서로 보장하는…국가들의 총연합” 구성 제안일 것이다. 이로 인해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설립됐고 그 본부가 1920년부터 1936년까지 제네바 팔레 윌슨에 있었다. 아직까지 같은 이름인 그 건물에는 오늘날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본부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훌륭한 일을 했지만 큰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미국에서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처럼 노예를 소유했던 이들이 국가 설립자, 초기 대통령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윌슨과 달리 그들은 최소한 당시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나았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들을 계속 기리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뉴올리언스 교육위원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학교도 노예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선 안 된다고 선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뒤 이 위원회는 조지 워싱턴 초등학교를 수혈 인종 분리 정책과 싸운 아프리카계 미국인 외과의사의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미국의 수도 이름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주메 윙고는 저서 ‘자유 민주 국가의 장막 정치’에서 ‘정치적 장막’이 어떻게 정치제도의 역사적 디테일을 흐지부지 덮어버리고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는지 설명한다. 이와 같은 일은 훌륭하거나 혹은 별로 훌륭하지 않은 정치 지도자에게도 일어난다. 그 결과 그들은 시민의식을 심어주는 상징적 수단이 된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이 달라지면서 역사적 인물의 다른 특징이 더욱 유의미해지고 그 인물이 주는 상징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윌슨이 프린스턴대학 공공국제정책대학원 이름에 추가됐던 1948년은 로자 파크스의 유명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이 일어나기 7년 전이었다. 미국 남부의 인종 분리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윌슨의 인종차별은 그래서 더욱 두드러진다. 윌슨은 오늘날 프린스턴대학이 중요한 가치를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윌슨이 프린스턴대학, 미국, 세계에 공헌한 것은 역사에서 지워질 수도 없고 지워져서도 안 된다. 대신 그의 공헌을 인식할 때 가치가 어떻게 미묘하게 바뀌는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윌슨의 긍정적 업적, 미국의 인종차별적 정책과 관행에 기여한 부분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프린스턴대학에서는 그 대화의 결과로 그러지 않았으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학생과 교수진이 이 대학 역사에서 중요한 한 인물의 복잡성에 대해 알게 됐다(내겐 확실히 도움이 됐다. 나는 프린스턴대학에서 16년간 가르쳐 왔고 윌슨의 몇몇 외교정책을 오랫동안 존경해왔다. 하지만 윌슨의 인종차별에 대해 알게 된 건 BJL 덕분이다). 우리가 나눠야 하는 대화의 최종 결과로 우리는 대학 이름에 윌슨을 붙이면 학교가 지지하는 가치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당연히 알아야 한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ㆍ윤리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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