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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공공기관 이번엔 산으로 올라가나?

입력
2017.08.0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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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늘리면 경영 점수 더 주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 180도 수정

일자리 명분 문어발 사업 확장 우려

우리 배가 지금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너도나도 잘해보겠다는 의욕은 넘치는 데 방향이 틀려 일을 엉뚱하게 그르치는 상황을 말한다. 숨 가쁘게 쏟아져 나오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을 보면 애는 쓰는 것 같은데 왠지 배가 산으로 올라는 것 같은 느낌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공무원 증원 시비를 다시 하자는 건 아니다. 새삼 위기감을 부른 건 공무원 증원에 이은 공공기관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1일 일자리를 늘리면 경영평가 점수를 더 주는 방향으로 2017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수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축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3개월 만에 공공기관 경영평가 방향까지 소리 소문 없이 180도 뒤바뀐 것이다.

공공부문 정책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 정부의 접근법은 정반대라고 할 만큼 크게 다르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부문은 비정상과 비효율로 가득 찬 ‘위기의 공룡’이었다. 공공기관은 눈덩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뼈를 깎는 사업 구조조정을 시도해야 했다. 그걸로 경영평가 점수까지 매겨졌다. 직원들에겐 생산성 향상을 명분으로 성과연봉제가 강요되기도 했다. 거센 저항이 일었다. 공공부문은 정권과 적이 됐다.

이번 정부 들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큰 정부’를 암시하며, 81만개 공공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공부문은 더 이상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회초리를 맞아야 할 개혁 대상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일자리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거듭났다. 지난 정부의 힘겨운 ‘헬스 프로그램’은 폐기됐다. 많이 먹고 덩치를 키워 체중을 불리는 게 단숨에 미덕이 됐다.

탄탄하고 날씬한 게 좋은지, 크고 육중한 몸매가 좋은 건지는 섣불리 단정할 게 아니다. 중국의 전설적 미인인 양귀비는 스스로를 만두에 비유할 정도로 뚱뚱했다지 않은가. 정책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을 일자리 창출의 텃밭으로 일구는 정책도 합리적 균형을 유지한다면 나름 유효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새삼 위기감을 얘기하는 건 바로 그 ‘합리적 균형’이 무너진 것 같은, 초조한 직감 때문이다.

문 대통령부터 “정부가 최대 고용주가 돼야 한다”고 나설 정도로,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 자체는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고 봐야 옳다. 그래도 마구잡이로 일자리 수만 늘려놓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 적어도 일자리의 상시적 필요 등은 보다 진지하게 계산돼야 한다. 그저 목표치를 정해 연 단위로 공무원 수를 늘리자거나, 경영 실적 점수까지 내걸며 공공기관의 일자리 늘리기 경쟁을 부추기는 건 아무래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합리적 균형을 잃은 공공기관 일자리 정책의 위험성은 비생산적 일자리의 양산이라는 단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더 심각한 위험은 공공기관이 일자리를 늘린다며 여기저기 방만한 사업 확장에 나서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무절제한 사업 확장이 민간 영역까지 잠식해 시장에 각종 불공정을 야기하고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게 어제 오늘이 아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데다, 독점적 사업이 많아 관련 수익사업에서 민간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선다. 그러다 보니 2013년 기준 국내 약 150개 공공기관 중 과반이 훨씬 넘는 90개가 대규모 수익사업에 진출했다. 공공기관은 좋자고 한 일이지만, 그만큼 민간의 사업 접근과 고용 창출 기회는 날아간 셈이다. 박근혜 정부 때 강력한 공공기관의 사업 구조조정이 추진된 건 이런 부작용을 감안한 것이기도 했다.

격변 속에선 종종 정책의 위험성이 간과되기 십상이다. “임기 내엔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넘길 게 아니다. 정부는 대통령 임기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전반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공공일자리 정책의 타당성을 겸허히 재검토해 합리적 균형을 찾아 나가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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