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2시간만 반짝? 결혼식 꽃의 '아주 특별한 변신'

알림

2시간만 반짝? 결혼식 꽃의 '아주 특별한 변신'

입력
2017.03.30 17:50
0 0
기부 받은 결혼식 꽃으로 국립의료원 환자와 환자 보호자와 함께 꽃꽂이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 김빛나 인턴기자(사진 오른쪽)가 다른 봉사자들의 작품을 참고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부 받은 결혼식 꽃으로 국립의료원 환자와 환자 보호자와 함께 꽃꽂이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 김빛나 인턴기자(사진 오른쪽)가 다른 봉사자들의 작품을 참고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3월은 겨울 내내 삭막했던 대지에 꽃 소식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꽃이 만개하는 3~4월과 결혼 시즌은 맞물린다. 최근 결혼식 소식이 늘어나면서 웃음꽃이 피는 봉사단체도 있다. 바로 매년 평균 4억 2,500만 송이로 버려지는 결혼식 꽃을(사회적 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 통계ㆍ2014) 재활용해 요양원과 병원의 환자들에게 선물하는 비영리단체 ‘플리’다.

플리에서 1년째 봉사활동 중인 이혜정씨(34)는 “겨울엔 봉사활동을 거의 못했는데 3월부터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이 오면 활동이 늘어날 듯해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했다. 결혼식이 끝난 직후부터 꽃을 재가공해 기부하기까지 싱싱한 꽃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플리 기부행사의 숨가쁜 일정을 인턴기자가 지난 25일 하루동안 체험해 봤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 도착한 봉사자들은 꽃 수거를 시작했다. 이날 오전 11시에 치뤄진 결혼식에서 사용된 꽃들을 이미 수도회 측에서 싱싱한 가지들만 골라놓은 상태였다. 6종류의 꽃들은 신부의 드레스를 닮은 하얀 색상이 대부분이었다. 플리의 한 봉사자는 “이곳 정동 수도원의 꽃들은 흰색 계열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가로 50㎝ 플라스틱 가방 3개를 꽉 채운 꽃들은 무려 8kg에 달했다.

꽃들의 다음 목적지는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이다. 오후 5시, 국립의료원 별관 2층 힐링룸에서는 결혼식 꽃들이 재탄생하는 꽂꽂이 강좌가 열렸다. 말기 암 환자의 보호자들과 자원봉사자까지 10명이 참가해 꽃바구니를 만드는데 열중했다. 꽃바구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던 나문경(29)씨는 “전 시드는 꽃을 많이 봤어요. 어머니 직업이 플로리스트라 도와드린 적이 많거든요”라며 “꽃이 금방 시드는 사치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로 거듭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작한 꽃바구니는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거친 후 전달한다.
제작한 꽃바구니는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거친 후 전달한다.

오후 6시, 완성된 꽃바구니를 들고 봉사자들이 암 병동의 병실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꽃 전달식을 시작했다. 화기애애하고 왁자지껄했던 꽂꽂이 시간이 무색하게 봉사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혹시라도 꽃 기부가 불편할 수도 있는 환자를 배려해서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전달식이 진행됐다. 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보호자도 있었지만 한 분을 제외하고 보호자들 모두 함박 웃음을 지으며 꽃을 받았다. 나이 지긋하신 보호자 한 분은 “오빠 꽃이야 꽃, 너무 예쁘지?”라며 의식이 없는 오빠가 마치 꽃바구니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꽃바구니를 눈 앞에 들어올렸다.

한 보호자는 꽃바구니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의식이 희미한 환자가 누운 위치에서 꽃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가 어딜지 탐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창문 앞에 꽃바구니를 놓은 그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듯 미소를 보였다. 병실에 놓인 꽃바구니의 꽃들 중 유일하게 보라색이었던 아스트로메니아의 꽃말은 ‘어떤 역경도 극복해내는 강인한 사람’이다.

환자가 편안히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꽃바구니가 놓였다.
환자가 편안히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꽃바구니가 놓였다.

아름다운 꽃바구니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여준 것은 의료원의 간호사들이었다. 한 간호사는 “꽃을 놓아드리고 환자 표정이 점점 밝아지시는 거 아세요?” 라며 “투병생활에 활기가 얼마나 중요한대요. 생화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그 가족에겐 큰 도움이죠”라고 말했다.

‘더 자주 꽃을 전달하러 와 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결혼식 비수기에는 기부 활동도 줄어든다. 플리의 진선미 매니저는 “꾸준한 활동을 위해 고정적인 기부처를 계속 발굴하려 노력 중이다”라며 “꽃을 즐긴다는 것은 정서적 위안이나 치유 효과가 있음에도 사치스럽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이런 활동을 통해 꽃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 김빛나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제학부 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