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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자 마초

입력
2014.12.0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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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macho)는 스페인어로 수컷을 뜻한다. 한때 유행한 ‘짐승남’처럼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이를 일컫기도 하지만, 통상 육체적이든 사회ㆍ정치적 맥락에서든 힘의 우위에 기반한 남성우월적 사고와 행태를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미니스커트 입고 네 다리로라도 음반 팔면 좋겠다.” “술집마담 하면 잘 할 것 같다.” …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막말ㆍ성희롱’ 파문을 접하고 ‘여자 마초’란 말이 떠올랐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힘을 맹신하는 마초들의 행태와 다를 게 뭔가.

▦ 박 대표는 모든 의혹이 음해라고 주장하며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배후로 지목했다. “방만하고 나태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을 개혁하려는 자신을, 재계약 조건에 불만을 품은 정 감독과 그에 휘둘린 박원순 서울시장, 능력은 없고 연봉만 높은 직원들이 합세해 몰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사태의 배경에 그런 측면이 있다 해도, 그의 막말 행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방송에 육성 그대로 일부가 보도됐듯이 육두문자까지 동원한 폭언은 “야단을 많이 친”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의 표현대로 “고문”에 가깝다.

▦ 박 대표는 자타공인 ‘성공한 여성’의 전형으로 꼽혀왔다.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 박사 출신에다 삼성그룹에 연구원으로 첫 발을 들여 전무에까지 올랐다. 업무추진력이 뛰어나고 알아주는 마당발이어서 임원 시절 주로 대관(對官)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삼성 쪽 사람들은 “말이 거칠고 트러블도 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추컨대 남성 못지않은 ‘여장부’ 스타일이 승진과 출세라는 보상을 통해 더욱 강화된 결과, ‘세계 일류기업’에 비하면 지리멸렬하기만 한 조직을 한껏 낮잡아 보고 직원들에게 서슴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오만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어도 전혀 무관하지도 않은 것이 ‘여성의 리더십’ 문제다. 한 여성학자도 여성들이 높은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분투한 것만큼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힘을 키우되 남성 중심의 기성질서를 답습하지 않고, 여성성을 잃지 않되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 길.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리더를 꿈꾸는 모든 여성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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