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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의 나라] “호기심에 찍어” 변명하지만… 치료 필요한 성중독 증상

입력
2017.08.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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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음증이 가벼운 일탈?

3년 이상 지속된 경우 많고

물질중독보다 고치기 어려워

#2 왜곡된 능력 과시의 수단

나만이 찍은 사진 반응 보며

일상 속 존재감ㆍ우월감 확인

#3 처벌ㆍ치료는 갈 길 멀어

가해자 70% 이상이 벌금형

형식적 상담은 재범 못 막아

전문가들은 몰래카메라로 원치 않는 타인의 신체, 나체, 성관계 등을 도촬하고 이를 소장,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히 치료를 요하는 '변태성욕장애'라고 단언한다. 이런 병적 현상이 하나의 문화, 장르가 돼 버린 것이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몰래카메라로 원치 않는 타인의 신체, 나체, 성관계 등을 도촬하고 이를 소장,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히 치료를 요하는 '변태성욕장애'라고 단언한다. 이런 병적 현상이 하나의 문화, 장르가 돼 버린 것이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버튼이 잘못 눌렸다.” “순간의 실수, 충동적이었다.” “그냥 보는 것과 찍는 것이 뭐가 다르냐.” 몰래카메라, 도촬 범죄로 현장에서 적발된 이들의 한결 같은 항변이다. 자신의 범죄를 가벼운 것으로 희석시키는 변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몰카 범죄는 결코 일회성이 아니며 촬영, 특히 유포가 발각된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성중독 증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타인의 신체와 사생활을 훔쳐보고, 유포해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충동적 실수? 엄연한 성욕장애

법무부 서울지방교정청 자문위원이자 한국성중독심리치료협회 대표인 김성 박사는 “몰카로 체포된 경우 ‘스트레스 때문에 한 번 찍어봤다’는 식으로 스스로 합리화하고 심리적 안전지대를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관련 충동과 환상이 최소 3,4년간 지속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단순 실수가 아니라 정신적, 인격적 문제가 내재된 성중독”이라고 진단했다.

2001년부터 중독연구를 해온 그는 수강명령 처분을 받거나 직접 상담소를 방문한 숱한 몰카 중독자를 상담해왔다. 김 박사는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물질중독(알코올, 마약 등)에 비해 행위중독(성, 게임, 쇼핑)이 더 고치기 어렵고, 그 중에서도 몰카와 같은 성중독은 가장 치료가 어렵다고 본다”며 “명백히 치료가 요구되는 병리 즉 변태성욕장애(관음증)인데도 이를 가벼운 일탈로 여기는 인식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약물로도 잘 대체되지 않는 것이 행위중독이 주는 쾌감인데, 성중독은 특히 그 강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변태성욕장애가 있는 이들의 경우 타인의 신체를 훔쳐봄으로써 얻는 강렬한 쾌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음란물을 통해 얻었던 왜곡된 성적 환상이 일상에서는 충족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관전하는 단계를 넘어 상황에 참여해서 남을 보고 찍으며 상상과 현실을 만나게 하고 여기서 극치감을 얻는 과정에 중독되는 거죠.”

주로 ▦성장기 트라우마, 외상, 성학대의 경험이 있거나 ▦음란물, 성매매 등으로 잘못된 성적 경험과 환상이 자신을 강렬하게 지배하고 있는 경우 ▦기타 이유로 인간(부부)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경우 등이 이런 중독에 취약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박사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피해의 정도가 상당한데도, 중독자들은 ‘여성이 보란 듯 그런 옷을 입었다’는 식의 피해자 비난, 자기 합리화를 흔히 한다”며 “이런 잘못된 세계관, 인식을 수정하는 통합적 전인격적 심리치료가 반드시 있어야 재범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성중독심리치료협회 대표 김성 박사는 "몰래카메라 범죄는 하나의 돌출된 성중독 현상으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같은 충동이 수 년째 반복되거나 만성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더 깊은 정신적, 인격적 문제가 내제된 경우가 많아 성인식, 윤리, 인성에 대한 치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한국성중독심리치료협회 대표 김성 박사는 "몰래카메라 범죄는 하나의 돌출된 성중독 현상으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같은 충동이 수 년째 반복되거나 만성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더 깊은 정신적, 인격적 문제가 내제된 경우가 많아 성인식, 윤리, 인성에 대한 치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타인 고통 나 몰라라 쾌감중독

촬영까진 하지 않더라도 몰카 촬영물을 즐겨 보는 심리도 건강한 정신상태는 아니다. 청소년의 경우 사이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접한 몰카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그러나 경험해보고 싶은 장면을 보고 빠져들기도 하고, 성인은 상업적 포르노 영상을 보다 전형적 패턴에 질려 죄의식 없이 몰카로 옮겨가곤 한다. 김 박사는 “제작된 동영상을 많이 보다 보면 패턴, 환경, 대상 등이 대체로 전형적이고 비슷비슷해 중독자들이 더 현실감 있고 설정되지 않은 것을 찾다 몰카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쾌감을 얻기가 쉽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자신의 쾌감에만 집중한 나머지 몰카 피해자의 고통을 떠올리지 못하고, 자신이 범죄의 결과물을 즐기고 있는 공범이라는 자각도 둔해진다는 것이다. 몰카 영상이 음란물과 뒤섞여 하나의 장르가 돼 버리고, 심지어 제작된 성인 포르노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현실은 한국사회가 앓는 관음의 병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김현아 변호사는 “몰카의 촬영도, 이 결과물을 보고 즐기는 것도 심각한 범죄라는 전 국민적 인식이 너무 부족한 채 죄의식 없이 소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몰카 유포로나마 자존감 확인

불특정 다수 여성, 지인, 심지어 연인이나 친척을 몰래 찍어 유포까지 하는 이들은 정도가 심각하다. 이들은 몰카 유포를 능력의 과시, 존재감 확인 수단으로 착각한다. 김형근 서울중독심리연구소 소장은 “내면의 결핍이 심한 이들에게 ‘나만 찍은 사진’, 즉 자신의 소유물을 퍼뜨리고 여기서 얻는 반응을 통해 내 ‘숨은 존재감’을 확인하는 과시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라며 “이런 찌질함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편하게 공유하고 서로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 박사는 “남들이 못하는 것을 내가 한다는 만족감에 빠지는 것이어서 일상에서 존재감, 우월감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정서적 건강상태가 더 나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몰카 게시를 비난하기보다 칭송하고, 환호하는 커뮤니티나 집단 문화는 이런 병리현상을 더 부추긴다. 해당 사이트나 게시판 내에서 서로 ‘행위적 약물’을 제공하면서 왜곡된 도취감에 빠진다.

김 소장은 “몰카 유포로 자존감을 충족하는 자체성애적 성향은 반드시 치료가 돼야 본인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건강하게 타자와 소통, 대화, 관계를 맺는 이들은 시각적 자극이나, 왜곡된 성취감으로만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헤어진 연인의 영상을 올리는 리벤지 포르노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본다. “보통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연인에게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가지지만, 이런 유포자에겐 처음부터 모든 것이 ‘도구적 관계’였을 뿐입니다. 타인에게 미치는 정서적 고통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자기애적 성향, 자기중심적 사고, 정서 미발달 상태는 반드시 치료가 돼야 하는 요소죠.”

처벌, 치료, 예방 모두 엉성

상황이 이런데도, 몰카 촬영 및 유포자의 처벌이나 병적 심리에 대한 치료 모두 엉성한 수준이라 재범의 위험은 크다. 특정인 식별이 안 된다며 아예 입건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법정에 넘겨지더라도 “반성의 의지”를 내비치면 쉽게 벌금, 집행유예, 선고유예에 그친다. 무죄나 선고유예를 의식한 검찰은 아예 기소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 4월까지 서울지역 법원의 몰카 범죄 판결을 분석한 결과, 1심에서 가장 많이 선고된 형은 벌금형으로 그 비율이 72%에 달했다. 벌금 액수는 200만원(26.6%)에서 300만원(22%)에 몰려 있다. 분석을 주도한 김현아 변호사는 “신체 일부, 나체, 성관계 동영상 등이 유출된 피해자들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을 호소하는데, 선고가 대부분 선고유예,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며 “가슴 등을 확대해 촬영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검찰도 유사한 기소 자체를 망설이는 경우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 기소율은 2012년 69.7%, 2013년 54.5%, 2014년 44.8%, 2015년 7월까지 32.1%로 뚜렷한 하락추세다.

김 변호사는 또 “벌금이 얼마가 선고되든 성폭력치료강의수강명령을 40시간으로 못박는 경우가 많아 범죄에 상응하는 치료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를 받으면 수강명령이 나오는데, 법원 단계에서 선고유예가 되면 수강명령조차 안 받는 현실이라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형식적인 상담치료만으로 몰카범들이 쉽게 감형받고 재범을 저지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 박사는 “가장 안타까운 것은 몰카 중독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엉성한 상담소견서 한 장으로 너무 쉽게 ’반성하는 자세’를 이유로 기소유예, 감형을 받는다는 것”이라며 “상담했던 전과 6범의 몰카 중독자 경우에도 앞서 계속 감형 목적의 상담을 받고 재범을 거듭해 적발된 것만 6번에 이르렀고 실질적으로 전혀 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분석에서도, 1심에서 가장 많이 적용된 감경사유는 ‘형사처벌 전력 없음과 기타’(19.99%), ‘반성 등 기타’(19.01%) 순이었다.

김 박사는 “몰카 중독은 전인격적 회복을 요하는 심각한 증상이자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며 감형 목적의 단순치료를 반복하지 않도록 치료하는 이의 공신력과 치료 내용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며 “또한 예방차원에서 청소년 시기부터 성윤리, 성인식,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성교육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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