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후 이색 마케팅 열기
“아파도 가입 가능” 상식 파괴
유병자 간편심사 보험부터
“결혼식 불미의 사고 땐 보상”
웨딩 보험 등 독창적 상품 속속
암ㆍ한방 건강보험 계약도 불티
새신부 A씨는 행복해야 할 결혼식이 천재지변으로 엉망이 돼 버렸다. 결혼식 당일 폭설로 인해 대다수의 하객이 불참해 결혼식이 취소되고, 공항으로 이동 중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항공편을 놓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웨딩서비스 업체 권유로 무상으로 가입했던 웨딩보험으로 결혼식과 항공편에 대한 피해 금액 일부를 보상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붕어빵 상품들이 판치던 보험업계에 진짜 ‘신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에 따라 상품가격 등 보험상품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결과다. 점점 더 치열해질 신상품 경쟁이 향후 보험업계 판도도 뒤흔들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라이프생명이 지난달 11일 내놓은 ‘현대라이프 양ㆍ한방건강보험’은 업계 최초로 첩약, 약침, 추나요법 등 한의학 치료비 정액 보장하는 상품이다. 실적은 고무적이다. 한의원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보름 만에 계약 건수 2,000건을 넘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생명보험협회로부터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다. 다른 보험사들은 3개월 간 동일한 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
롯데손해보험의 ‘롯데 웨딩보험’은 신혼부부가 웨딩업체 사업자를 통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결혼 당사자 사망이나 전염병 등 특정 사유로 인한 결혼식 취소, 의상ㆍ예물 손상, 신혼여행 취소로 인한 각종 위약금 등 결혼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손해를 종합적으로 보장한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결혼식이 취소됐으니 계약금을 돌려달라거나 예식장 직원이 웨딩드레스를 밟아서 옷이 찢어졌다든지 결혼 과정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들로 웨딩업체와 신혼부부 간 분쟁이 많다 보니 웨딩업체 쪽에서 먼저 보험을 만들어 달라는 수요가 많았다”며 “영국에는 이미 이와 같은 보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상품 중 보험사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은 ‘유병자 간편심사보험’이다. 유병자 간편심사보험은 ‘아픈 사람은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노인이나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사람도 보험에 들 수 있다. 미국, 일본에서는 이미 대중화된 보험상품으로 일명 ‘3ㆍ2ㆍ5’(▦3개월 이내 입원ㆍ수술ㆍ추가검사 의사 소견 ▦2년 이내 입원ㆍ수술 ▦5년 이내 암 진단 및 수술)라 불리는 일정 기준에만 해당되지 않으면 된다. 기존에는 병력이 있으면 ‘유병자할증 제도’를 통해 보험료 할증이나 부담보(일부 담보를 보장하지 않음) 보장만 받을 수 있었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8월 ‘모두에게 간편한 건강보험’을 출시해 지난해 말까지 7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며 유병자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삼성화재도 지난달 간편심사보험인 ‘간편하게 건강하게’를 출시했고, KB손해보험도 비슷한 시기 ‘KB 신(新)간편가입 건강보험’을 선보였다. 흥국화재도 최근 ‘무배당 행복든든 간편가입 보장보험’을 내놨다. 급증하는 노인 인구를 고려하면 고령자ㆍ유병자 보험 시장은 보험사들의 블루오션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보험사들의 차별화된 상품 개발 전략은 금융당국이 지난해 보험업계를 얽매던 보험상품의 각종 규제를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면서 본격화됐다. 금융당국은 보험상품의 사전신고제, 표준이율과 위험율 조정한도를 폐지해 상품개발과 상품가격을 자율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가격 규제 때문에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설계해도 보험료를 높게 받을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합당한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게 됐다”며 “독창적인 상품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화제성 상품에 머물지 않으려면 보험사의 손해율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보험시장에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보험사의 언더라이팅(인수심사)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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