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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프랜차이즈 시대

입력
2018.07.02 19:11
수정
2018.07.03 14: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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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 만든다는 건, 어쩌면 기업 하나를 만드는 것과 같다. 벤처기업 창업과 유사하다고 할까? 영화의 콘셉트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만들고 배우와 스태프 등의 인력을 모아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건 때론 막막하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다. 이것은 창조성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예술적 작업이기도 한데, 여기엔 반드시 산업적인 통찰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단지 흥행을 위해서? 아니다. 비즈니스 전략 없인 영화 자체가 제작될 수 없고, 설사 기적처럼 만들어진다 해도 성공 확률은 극히 낮다. 산업이라는 틀은 상상력과 창조력이 발휘될 수 있는 필수적인 토대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영화의 주목할 만한 흐름은 시리즈의 강세다. 이건 단지 단발적인 흥행이 아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비로소 ‘프랜차이즈’라는 산업적 전략이 조금씩 움트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무비를 봐도 알 수 있듯, 프랜차이즈 전략은 이점이 많다. 기존의 테마와 캐릭터를 끊임없이 변주시키는 방식은 고정 팬들에게 ‘익숙한 새로움’을 선사한다.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하는 ‘창업 방식 영화’에 비해, 프랜차이즈 무비는 이미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는 산업 전체가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7월 1일 현재, 2018년 상반기 북미 박스오피스를 보자. 7억달러 가까이 벌어들인 1위 ‘블랙 팬서’를 필두로 10위 안에 7편이 속편이나 스핀오프다. 9위를 차지한 ‘피터 래빗’은 2020년에 속편이 이어질 예정이니, 말 그대로 ‘프랜차이즈 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도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 10위 안에 세 편이 프랜차이즈 영화였다. 작년 말에 개봉된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2018년에도 6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총 1,441만명으로 1위에 올랐으며, 올여름엔 ‘인과 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3년 전에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달고 개봉했을 때만 해도 과연 속편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던 ‘탐정’ 시리즈는, ‘탐정: 리턴즈’로 돌아와 5위에 올랐다. 벌써 10년차가 된 ‘조선명탐정’ 시리즈는 ‘흡혈괴마의 비밀’로 8위를 기록했다. 이례적인 시리즈 영화의 강세다.

이와 함께 언급할 건 리메이크 영화다. 2018년 개봉작 중 흥행 1위를 기록한 ‘독전’을 비롯, ‘지금 만나러 갑니다’ ‘리틀 포레스트’ ‘골든 슬럼버’ ‘사라진 밤’ ‘바람 바람 바람’ 등 이미 외국에서 한 번 영화화되었던 수많은 작품들이 ‘리메이드 인 코리아’로 관객과 만났다. 이건 트렌드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의 장르적 중심이 ‘현실’에서 자극을 받은 범죄 스릴러나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였다면, 리메이크는 영화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는 재창조의 전략을 구사한다. 기존의 스타일과 장르 콘셉트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통해 한국 시장에 ‘현지화’하는 셈이다.

사실 낯선 현상은 아니다. 과거 한국영화는, 특히 1980년대 충무로는 수많은 속편을 내놓았고, 대본소 만화부터 가요 제목이나 개그맨들의 유행어까지, 인기를 끄는 모든 것을 영화로 끌어들여 상업화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 세대 전엔 산업적 침체기를 돌파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면, 최근의 프랜차이즈와 리메이크는 콘텐츠의 힘을 좀 더 효율적으로 강화시키려는 전략이며, 무엇보다도 탄탄한 테크놀로지와 영리한 각색 솜씨가 밑받침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런 시도가 이뤄진다면 한국영화는 리스크 많은 벤처 산업에서 좀 더 안정적인 엔터테인먼트로 변해 갈 듯하다. 어쩌면 그 안정성은 ‘독과점’이라는 난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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