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역할 교육 통해 고리 끊어야”
학교에서는 평범한 교사인 A(37ㆍ여)씨는 여섯 살, 열살 두 딸에게는 너무 무서운 엄마다. 딸들이 아기 때 밤에 울어 잠을 깨울 때는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아이 머리채를 쥐고 흔들거나 엉덩이를 물어 뜯었다.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A씨는 스스로 경기 지역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찾아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는 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을까. 심리치료 중 하나인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하면서 A씨의 마음의 병이 드러났다. A씨의 그림에서는 작은 아이가 구석에서 쪼그리고 울고 있었는데,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때리고 어머니는 옆에서 울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A씨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많이 봤고, 어머니를 보호하려다 나도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아버지의 외도와 생활고, 아들로 태어나길 원했던 부모를 만족시키지 못해 낮아진 자존감 등이 더해져 A씨는 20살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심리검사에서는 A씨의 상태를 “부모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모델이 형성돼 있지 않고, 분노를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폭력의 고리는 A씨에서 끝나지 않았다. A씨에게 학대를 당해 온 큰 딸은 동생과 다투면서 동생의 얼굴을 발로 밟아 피멍이 들게 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A씨 아버지에서 시작된 학대가 손녀까지 3대(代)째 이어진 것이다.
아동학대의 특징 중 하나는 이런 ‘학대의 대물림’이다. 부모에게 맞고 자란 아동이 성인이 된 후에는 죄의식 없이 자신의 자녀를 학대하는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부천 아동 시신훼손 사건의 가해자인 아버지 최모(34)씨는 경찰에서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체벌을 많이 받았다”고 진술했고, 어머니(34)는 부모의 무관심으로 방임상태에서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달 인천 소녀 학대 사건의 가해자인 아버지(32) 역시 경찰조사에서 어릴 적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1만여명 중 어릴 적 학대를 당한 적이 있는 사람은 536명이었다. 아동학대 가해자 100명 중 5명이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얘기다. 학대 피해 아동들이 주로 겪는 문제도 공격성, 폭력행동 등이었다. 피해 아동 1만여명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반항ㆍ충동ㆍ공격성, 폭력행동, 거짓말, 도벽 등과 같은 ‘적응ㆍ행동 문제’가 전체의 36.3%로 가장 많았다.
소아정신과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맞으면서 ‘힘으로 다른 누군가를 누르고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대개 이 같은 학대를 부모의 훈육으로 받아들이는데, 부모가 되면 자신의 자녀에게 학대를 대물림 한다는 것이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부모 역할은 다른 지식이 아닌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체벌을 많이 받고 자란 부모는 무의식적으로 체벌이 훈육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매부터 들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물림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부모 교육과 상시적 상담이 필수다. 실제 2014년 아동학대 가해자 1만여명의 가장 큰 특징이 ‘양육 태도와 방법을 잘 모른다’(33.1%)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승환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역할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부모 역할을 연습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현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는 예방이 중요하므로 저소득층 밀집 지역 등 아동학대 위험이 높은 지역의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물림 학대 가해자 역시 과거 피해자였던 만큼, 이들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치료도 중요하다. 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는 “학대 피해 아동과 가해자에 대한 치료가 모두 필요한데도 가해자에 대한 치료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가해자 치료 프로그램 개발과 질적 수준 향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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