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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격식 외교

입력
2017.10.23 16:3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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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 때문에 외교가 파행하기도 한다.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는 국빈방문을 요구하는 중국과 공식방문으로 낮추려는 미국이 충돌, 결국 백악관이 아닌 뉴욕으로 회담장을 옮기는 촌극을 빚었다. 중국은 10년 만에 방미하는 최고지도자의 체면을 강조했지만, 미국은 톈안먼 사태에 대한 조야의 강한 비판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2006년 후진타오 방미 때는 국빈방문 여부로 서로 상대방 성명을 반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빈이 아니라며 만찬을 거부하고, 통역자가 중국을 대만으로 잘못 부르는 일까지 겹쳐 역대 최악의 미중 회담으로 남았다.

▦ 남북관계도 비슷하다. 2013년 6월 서울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 당국회담이 불과 하루 전 무산된 건 수석대표의 ‘급’ 때문이었다. 통일전선부장을 보내라는 우리 측 요구에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국장을 내세우고, 이에 우리 측이 차관으로 급을 낮추자 북한이 일방적으로 대표단 파견을 보류했다. 2015년 8월 ‘2+2 남북 고위급 접촉’도 ‘국가안보실장ㆍ통일부장관(남)-총정치국장ㆍ노동당비서(북)’의 절묘한 조합이 없었다면 결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다음달 첫 방한이 ‘1박 국빈방문’으로 결정됐다. 전후로 방문하는 일본, 중국은 2박3일 일정 인데도 공식방문인 것과는 대비된다. 로널드 레이건 이후 한국을 방문한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다녀갔던 비무장지대(DMZ)도 이번에는 방문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은 대부분 공식방문으로 치르는 게 최근의 흐름이다. 비용도 문제지만 국빈방문에 따른 의전이 복잡해 정상들이 실제로 얼굴을 맞댈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1박 국빈방문이 어색하게 보이는 이유다.

▦ 미중 관계나 남북 관계에서 보듯 격식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둘의 관계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이가 좋은 나라에서 의전 문제로 잡음이 새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자무대를 제외하고 당선인 시절을 포함해 트럼프와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번에도 골프를 같이 하고 비공식 만찬을 먼저 갖는다. 공식 정상회담은 다음날이다. 1박의 짧은 일정을 국빈방문으로 채우려는 것이겠지만, 한미관계가 의전과 격식부터 세세히 따져야 할 관계가 됐다는 게 씁쓸하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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