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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가

입력
2017.07.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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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 마리옹 뒤발 그림ㆍ박선주 옮김

정글짐북스 발행ㆍ32쪽ㆍ1만2,000원

앙통의 완벽한 밭에서 수박 딱 하나가 없어졌다. 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불안한가. 어찌하여 이토록 쉽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가. 정글짐북스 제공
앙통의 완벽한 밭에서 수박 딱 하나가 없어졌다. 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불안한가. 어찌하여 이토록 쉽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가. 정글짐북스 제공

수박을 샀다. 복수박이니 애플수박이니 하는 앙증맞은 수박들이 눈길을 끌기에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수박은 큼지막해야 제 맛이다. 축구공만한 진초록 수박들을 둘러보다가 때깔 고운 놈 몇 개를 골라 두들겨도 보고 꼭지 색깔도 살펴보고 무게도 가늠해보았다. 그래 봤자 다 시늉이다. 그게 그거 같아서 결국은 아무거나 집어왔으니까. 잘 익은 수박은 칼을 대자마자 달큰한 향기를 내뿜으며 쩍 갈라진다. 까만 씨가 점점이 박힌 분홍빛 속살이 보기만 해도 달다.

앙통은 수박 농사를 짓는다. 밤낮없이 수박밭에 애정과 정성을 쏟는다. 씨알 굵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박이 빈틈없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수박밭. 이것이 앙통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그런데 이 완벽한 수박밭에 도둑이 들었다. 수박 한 통이 사라진 것이다. 밭 한복판에 이가 빠진 것처럼 구멍이 났다.

앙통의 마음에도 구멍이 났다. 고작 수박 한 통을 잃었을 뿐인데, 여전히 수박밭은 탐스런 수박들로 가득한데, 어차피 수확해야 할 텐데, 앙통은 사라진 수박과 수박밭에 옴폭 팬 자국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허전하고 슬프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악몽도 꾼다. 도둑맞은 수박이 수박밭 옆 목화밭으로 굴러가는 꿈, 창고의 생쥐들이 수박을 와작와작 먹는 꿈, 수박을 훔쳐간 범인이 앙통 자신인 꿈. 사라진 수박 한 통이 영혼을 짓누르고, 사라진 수박 한 통에 밭 가득한 수박들이 빛을 잃었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잘 익은 수박처럼 달콤하고 싱그러운 첫인상과는 달리 매우 진지하다. 수박밭 한복판에 침통한 얼굴로 서 있는 주인공은 마치 수박이 사라진 빈 자리를 제 몸으로 메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집채만큼 커진 수박들, 그 사이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주인공, 저녁놀 지는 하늘에 눈동자처럼 떠 있는 수박, 수박이 흘리는 붉은 눈물, 도둑맞은 수박이 일으키는 홍수, 줄무늬 진 하늘과 뒤엉킨 그림자, 수박 속에 씨처럼 박혀버린 앙통…. 강박증에 시달리는 이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림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불안한가. 어찌하여 이토록 쉽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가.

더 이상 기쁨도 자랑도 자부심도 아닌 수박밭에서 앙통은 해방될 수 있을까. 그는 삶의 기쁨과 열정과 보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수박을 한 입 베어 문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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