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21일 비례대표 명단 파동에 대해 “나를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전날 비례대표 명단 추인을 거부한 중앙위의 집단 반발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명단을 함께 작성한 공동 책임이 있는 비대위원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김 대표는 ‘친노무현계·운동권’이 다수인 중앙위 반발의 이면에 구 주류의 ‘계파 패권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 영입 후보들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자신의 권한을 흔들고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또 ‘셀프 공천’이란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절충안을 만들어 서둘러 봉합하려고 한 비대위원들에 향한 배신감을 표현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 대표가 이날 오전 자신의 광화문 사무실에서 기자들에게 격정 토로한 내용에도 이 같은 불만이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_자신을 2번으로 선정한 이유는.
“옛날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비례대표 12번 달고 13대 국회 체험을 했다. 그 때 그 분이 ‘대통령 떨어지고 국회의원이라도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 앞 번호를 못 받고 12번 받았기 때문에 평민당 여러분이 안 찍어주면 김대중이 국회도 못 가니 표를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정치 안 한다. 솔직하게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2번 달고 국회의원 하나 12번 달고 하나 마찬가지다.”
_후순위 달면 배수진을 친다는 평가도 있다.
“배수진이라고 생각 안 한다. 내가 제일 기분 나쁜 게 그거다. 내가 이것(대표)을 하고 싶어서 했다고 생각하나. 사정하고 내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해주고 있는 거다. 내가 응급 치료하는 의사 같은 사람인데 환자가 병 낫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내가 당을 조금이라도 추슬러서 수권정당을 한다고 했는데, 그걸 끌고 가려면 내가 의원직을 갖지 않으면 할 수 없다.”
_총선 이후 당을 추스르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가.
“총선 이후 내가 던져버리고 나오면 이 당이 제대로 갈 것 같나. 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중앙위에서 떠드는 그런 광경을 50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래 갖고는 당이 될 수가 없다. 중앙위에 (비례대표) 순번 해 달라고 가면 난장판 벌어질 것이라고 (비대위원들에게) 경고했다. 중앙위 권한이니까 중앙위원들이 이번 총선에 대해 책임까지 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비대위가 필요 없는 것 아니냐.”
사실상 전권을 부여 받은 자신의 결정을 흔들고 있는 중앙위뿐 아니라 당초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다 당 안팎의 비판에 입장을 바꿔버린 비대위원들을 동시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_비례대표 1번(박경미 홍익대 교수)에 대한 제자 논문 표절 논란이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상황이 인공지능이나 컴퓨터 쪽으로 가는 것 아니냐. 전부 다 수학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정해서 모셔온 것이다. (표절 의혹은) 본인한테 사정을 다 들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_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이 중앙위에서 비례대표 후보군 칸막이를 허물자고 했다.
“그 사람이 혁신위원 했던 사람이라며? 나를 무슨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어 가지고. 저 사람들이 지금 핑계를 대는 거다. 이야기하려면 정직하게 해야 한다. 지금 정체성 때문에 그러는 거다. 자기들 정체성에 안 맞는다는 거야. 어제 저렇게 해서 일반인에게 얼마나 표를 깎아먹은 줄 아나. 더민주를 왜소한 정당으로 만들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_중앙위에서 순번을 바꿀 경우 대표직 유지가 의미 없어지는 것 아닌가.
“비대위를 만들어 달라고 했으면 권한을 줘야지 비대위가 끌어줄 것 아니냐. 근데 그게 싫다고 하면 그걸로 끝나는 거지.”
_대표직도 내려놓을 생각이 있는가.
“대표직을 내놓고 안 내놓고 그건 나한테 묻지 말고. 이 사람들은, 내가 무슨 비례대표 하나 따먹고 무슨 목적이 있어서 하는 줄 안다. 내가 제일 기분 나쁜 게 그거다. 속마음을 다 가둬놓고 내가 큰 욕심이 있어서 한 것처럼 인격적으로 사람을 모독하면 나는 죽어도 못 참는다.”
_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의 경우 아들 비위 논란이 있는데.
“내가 무슨 수사기관도 아니고. 몰랐다. 어제 드러나서 알게 됐다.”
_비례대표 A그룹(당선권 1~10번) 선정 배경은.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소외계층을 안 넣었다고 하는데 소외계층을 비례에 하나 넣으면 더민주가 소외계층에게 잘 해줬다고 생각하나. 평소에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좀 정직하게 살라는 거다.”
_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나.
“출구 전략이 없다. 자기네들 뜻대로 해보라고 하고 기다리고 있다.”
김회경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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