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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00억원으로 살 수 없는 법조인

입력
2016.06.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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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A씨는 현직 기자 시절 여러 특종 보도와 문재(文才)로 높이 평가 받았다. 언론계 선ㆍ후배 동료들은 물론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다양한 요직 인사들과 두터운 인간관계를 맺었다. 평판도 좋고 수완도 좋았다. 그런데 현직 기자 시절 자신이 담당했던 분야의 한 유망한 업체 비상장 주식을, 그것도 그 업체로부터 빌린 돈으로 샀다가 상장 후 팔아 100억원대의 대박을 쳤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그가 그 대가로 해당 업체를 위해 홍보성 기사를 써주었는지 여부는 오래된 일이라 확인되지 않았다. 퇴직 후에는 마당발 인맥을 내세워 좋은 기사가 나게 해주겠다며 또는 문제되는 기사가 빠지게 해 주겠다며 여기저기서 거액을 받았다. A씨는 합법적으로 받은 돈이었고 후배 기자들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 부당한 로비를 벌인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돈을 준 측에서는 A씨가 그런 명목으로 돈을 받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관련된 기사는 돈 준 측이 원하는 대로 난 적도 있고 안 난 적도 있다.

A씨가 실제 사례라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이쯤 되면 사회적으로 공공성이 큰 직업인 언론인이, 독자의 알 권리 충족은 염두에 없고 업계와 유착해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하다는 데에 분노할 것이다. 기자들이 자기들끼리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해 매체를 사적으로 이용해 서로 봐주면서 사리를 챙기는 족속이라고 냉소할 것이다. 연루된 언론사들이 나서서 돈이 오간 대가가 과연 무엇인지 밑바닥까지 파헤쳐 봐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요즘 서초동을 시끄럽게 하는 전관 변호사들과 현직 검사 사건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 바로 그렇다.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는 2건의 사건 수임료로 50억원씩 10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통 검사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는 퇴임 후 2013년 한 해에만 91억원의 신고된 수임료 매출을 올렸다. 진경준 검사장은 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넥슨에서 빌린 돈으로 사들여 126억원을 벌었다.

정당하게 번 돈이라면야 부럽더라도 누가 뭐라 할까. 한편으로는 이들은 일부 소수 예외적 사례일 뿐 대다수 판ㆍ검사들은 오늘도 격무에 시달리며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밤샘 야근을 하느라 몸을 축낼 것이라고 믿었다. 설마 ‘옷을 벗기만 하면 한 몫 단단히 챙기리라’ 작정하고서 선고하고 수사하는 판ㆍ검사들이 있으랴 여겼다.

그런데 의혹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설마가 아닌 것만 같다. 진 검사장이 수상한 돈 거래를 감시하는 금융정보분석원에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넥슨과 관련된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않았다면, 도대체 주식 매입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거짓말을 거듭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전관 변호사들이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며 상상치 못할 수임료를 요구한 것을 보면 전관의 영향력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기도 어렵다. 설마 했으나 정말로 퇴임 후 한방에 보상받기 위해 그처럼 열심히 일해온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큰 흠집이 없는데도 퇴임 5개월만에 16억원을 벌어들인 이유로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 사례를 떠올려 보면 극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법조계 일반의 문제였나 싶다.

공소시효 지난 진 검사장에 대한 수사는 불필요하고, 최 변호사와 홍 변호사가 너무 욕심을 부려 재수없이 걸려든 사례라고 생각한다면, 위 A씨 사례를 다시 읽어주길 바란다. 분노하거나 응징의 욕구가 솟구친다면 요즘 법조인을 보는 국민의 시각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된다. 판ㆍ검사들이 자기 자리를 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정의의 심판을 바라는 서민의 눈물을 보지 못한다. 50억원, 100억원으로도 살 수 없는 법조인의 가치에 자부하는 이들을 보고 싶다.

김희원 사회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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