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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파괴하는 IS의 속보이는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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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파괴하는 IS의 속보이는 노림수

입력
2015.05.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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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율법 수호 미명

고대문명 원형 보존 유적 수천개

석상·조각 부수고 서적까지 불태워

'우상 제거' 주장하지만

이슬람 성직자·학자 대부분

"그릇된 해석일 뿐" 지적

문화유산 보존 위한 공조 절실해

IS가 올 2월 공개한 영상에서 IS 대원이 이라크 고대 유적 하트라를 망치로 부수고 있다. AP 연합뉴스
IS가 올 2월 공개한 영상에서 IS 대원이 이라크 고대 유적 하트라를 망치로 부수고 있다. AP 연합뉴스

기원전 13세기 티그리스강 인근에 세워진 고대국가 아시리아의 두 번째 수도 님루드. 이라크 북부 모술 인근에 자리한 이곳에 올 3월 불도저가 들이닥쳤다. 오래 간 님루드 중심부를 지켰던 거대한 반인반수 석상 ‘라마수’는 중장비가 쏟아 붓는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세계 고고학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왕조의 무덤 유물들은 하루 아침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라크 정부 당국은 사건 직후 “이슬람국가(IS)가 정오 기도시간 직후 님루드 유적 파괴에 나섰다”며 “현장에서 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장비들과 트럭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대량 학살과 살인 테러 활동에 치중했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올 들어 점령지 ‘문화 청소’에 혈안이 돼 있다. IS는 올 초 또 다른 고대 유적 하트라와 모술박물관에 전시된 석상, 조각을 망치로 깨부수는 영상을 공개했고, 고대 서적 수만권을 태우며 현대판 분서갱유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님루드 내 유적들을 수십개 폭탄을 이용해 대부분 폭발시켰다.

IS는 점령지 시민들이 이슬람 율법대로 유일신 알리만을 섬기게끔 우상숭배물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릇된 율법 해석일 뿐 극단적인 폭력 행위를 선전활동에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괴 유적 수천년 역사 담고 있어

IS는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의 3분의 1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 상당부분이 포함된다. 이곳의 수천개 유적들은 대부분 고대 문명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그 자체로 의미가 상당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거나 꾸준히 후보로 꼽히는 곳들도 있다.

지난 2월 IS의 공격을 받은 하트라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거대한 요새도시이자 최초 아랍왕국 수도였다. 동서양 건축 양식이 독특하게 조화를 이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로마 제국과 한나라를 잇는 실크로드 위에 있어 교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통했다.

님루드 역시 3,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유네스코의 잠정적 등재 대상에 올라 있는 데다 1980년대 이곳의 왕조 무덤에서 각종 유물이 발견된 일은 고고학계에서 기념비적 사건으로 꼽혔을 정도다.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2500년부터 기원전 605년까지 약 1,900년에 걸쳐 세력을 떨친 만큼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등에 걸친 방대한 영토를 정복했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중요 자산에 대한 IS의 공격이 끊이질 않자 지난 3월 성명을 내고 “문화유산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IS의 행위는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어떤 정치·종교적 목적으로도 인류 문화유산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이 지역 모든 정치·종교 지도자들은 이 만행에 대항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도 성명을 내고 “유적파괴 행위는 또 다른 폭력의 형태”라며 “문명의 요람과 같은 지역에서 모든 인류 기억의 산물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같은 달 IS 대원들은 이라크 모술에 위치한 오래된 이슬람 사원을 폭발시켰다. AP 연합뉴스
같은 달 IS 대원들은 이라크 모술에 위치한 오래된 이슬람 사원을 폭발시켰다. AP 연합뉴스

율법 수호 명분 이면엔 세력 과시

이라크 시리아 등 점령지 내 문화유산은 IS의 주요 자금 공급원 중 하나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고고학 연구자인 주나이드 아메르 하비브는 최근 AP통신에 “IS가 약탈한 유물들은 IS의 부족한 현금을 충당하는 주요 재원”이라며 “이를 통해 마련한 돈으로 대원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월급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S의 문화유산 밀매 규모는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연간 1억달러(약 1,074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 시리아에서 미국으로 밀반입된 문화유산 중 2013년 신고된 것만 1,100만달러 규모로, 전년 대비 134%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IS가 주요 자금원을 거듭 파괴하면서 얻으려 하는 표면적인 실리는 ‘이슬람 율법 수호’다. 엄격한 유일신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 이용할만한 유산들을 모두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IS가 올 2월 공개한 모술박물관 파괴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은 “소위 아시리아인, 아카드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전쟁의 신이나 농업의 신에 의지하고 이들을 위해 희생했다”며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이슬람 성지)에서 거룩한 손으로 이러한 우상숭배물들을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함마드의 동료들도 다른 나라를 점령할 때마다 우상숭배물들을 파괴하곤 했다. 우리도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유적파괴와 더불어 타 종교시설을 훼손하며 그들이 꿈꿔왔던 ‘진정한 칼리프국가(이슬람 지도자가 주도하는 신정국가) 건설’을 위한 원년을 스스로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성직자와 학자들 대부분은 고대 석상과 조각품이 이제는 문화유산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 IS가 내세우는 ‘이슬람 율법 수호’는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 이슬람기구 가운데 하나인 다르 알이프타는 “이라크 모술박물관에 있는 고대 석상을 부수는 장면은 신앙의 가르침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집트의 수니파 최고 종교기관 알아즈하르도 “IS가 이라크와 시리아, 리비아 내 장악 지역에서 유물들을 파괴하는 행위는 전 세계에 대한 중대 범죄”라며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서도 유물 파괴는 금기사항이며, 역사가 절대 잊지 않을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설교를 통해 “IS가 이라크의 현재뿐 아니라 역사와 고대 문명까지도 무참히 공격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IS가 앞세우는 명분 이면에 국제적 관심을 끌기 위한 본래 목적이 숨어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미국 주도의 공습과 강력한 제재로 위기에 몰린 IS가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기 위해선 이 같은 자극적인 파괴 행위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IS는 유적 파괴를 과시하며 이를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고, IS의 존재감과 그들의 사상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 아울러 점령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알카에다 등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 차별화할 수 있다. 주요 언론들이 IS 만행을 앞다퉈 기사화하면서 대원 모집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3월 IS에 의해 훼손된 님루드의 반인반수 석상 '라마수'르 정리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3월 IS에 의해 훼손된 님루드의 반인반수 석상 '라마수'르 정리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문화유산 보존 협약 등 개정 필요

이라크 정부는 3월 IS의 무자비한 유적 파괴 행위를 막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합군에 공습을 요청했다. 압델 파하드 알셰리샤브 이라크 관광문화재부 장관은 그러나 “우리의 영공이 우리 손이 아닌 국제연합군 손에 있지만, 현재로선 이 공습만으로 이라크 문화재를 보호하진 못하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저버리지 못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최근 극단주의 이슬람단체의 원유 및 문화유산 거래, 인질 몸값 지급 등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문화재 복원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극단주의 세력의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문화유산보호법이 너무 오래됐다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1954년 전시 혹은 무력 충돌 시 문화재를 보호하는 원칙과 방향을 규정한 ‘헤이그 협약’을 체결했지만, 이는 재래식 전쟁을 염두에 둔 것일 뿐 최근의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1999년 관련 조항의 적용 범위가 내전 등으로 확대됐으나 이라크나 시리아 등이 서명하지 않는 바람에 이들 국가에서 내전으로 촉발된 IS 사태와 그들의 유산 파괴 행위에는 이 협약을 적용하기 힘들다. 특히 지난 2001년 탈레반이 세계적 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해 유사한 파괴행위에 대한 우려가 커졌음에도 15년 가까이 아무런 대안이 준비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IS의 추종자들이 전 세계에 분포돼 있기 때문에 이들이 전방위적으로 문화유산 파괴를 계속 이어간다면 피해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염려도 커진다. 미국 소재 시리아 인류학자 아무르 알 아짐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IS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문화유산들로 점차 넓게 손을 뻗칠 것”이라며 “이러한 파괴행위는 그들의 점령지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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