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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미학주의자가 선보이는 강렬한 서사

입력
2017.10.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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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소설 10편을 예심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 2편씩 소개합니다. 최근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기준영의 ‘이상한 정열’, 김덕희의 ‘급소’, 김사과의 ‘더 나쁜 쪽으로’, 박민정의 ‘아내들의 학교’, 이유의 ‘커트’,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정영수의 ‘애호가들’,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 조해진의 ‘빛의 호위’,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입니다.

‘급소’는 신인작가 김덕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첫 인사로서는 아주 강렬한 소설집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급소’는 신인작가 김덕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첫 인사로서는 아주 강렬한 소설집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덕희의 첫 소설집 ‘급소’에는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혼신을 다해 써낸 공력이 역력하고, 신예작가의 감각과 특장이 편편에 스며 있다.

서사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이야기들처럼 강렬하다. 늪돼지 사냥꾼의 이야기 ‘급소’, 익사체를 건져내는 어부가 주인공인 ‘자망’, 글 모르는 필경사의 내력을 담은 ‘낫이 짖을 때’, 한의사의 죄의식과 정염이 출렁이는 ‘혈’은 이야기 자체의 욕망으로 빚어진 단편들처럼 보인다. 이들 소설은 내적으로 응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서사의 완결성과 미의식을 추구하는 작가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데, 작가는 완고한 미학주의자다. 그의 소설들은 도저한 비극의 세계를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는 필멸하는 세계에 맞서 영원한 이야기를 지으려는 자의 숙명이 읽힌다. 그는 마치 혈을 짚어 침을 놓듯 소설을 짓는, 고전적인 작가의 상을 새겨놓고 있다.

그의 문장은 읽는 맛이 있다. 정교하고 유려하다. 소재와 인물에 맞게 세공된 묘사는 실감의 층위를 다르게 한다.

‘붓에 물을 적시자 딱 그만큼의 무게가 느껴졌다. 너무 가벼워 날아갈 것만 같던 붓이 아래쪽으로 중심이 잡히고 손가락에 넣은 힘들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문하생은 붓을 일으키고 움직이고 거두는 법, 붓을 당겨 끌고 찍어 미는 법, 둥글게 굴려 방향을 돌리는 법과 매섭게 꺾는 법, 뾰족하게 빗겨 드는 법과 풍만하게 눌러 맺는 법을 보여주었다.’(‘낫이 짖을 때’)

‘급소’의 이야기들은 궁금증과 긴장, 그리고 반전이 잘 조율된 채 진행된다. 사건은 인과가 분명하고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모호하지 않고 뚜렷한데 그런 구성력에 힘입어 이야기의 여운과 잔상이 오래 남는다. 가령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로 시작하여 같은 문장의 반복으로 끝을 맺는 ‘낫이 짖을 때’의 경우 자기가 주인공이 된 글을 필사하는 까막눈 필경사의 아이러니한 생에 닿으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김덕희 소설의 환상성도 빼놓을 수 없는 특장이다. 시간의 차원을 거슬러 한 사람의 현실과 꿈이 거울처럼 만나고(‘하울링’), 반려견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며(‘코뮈니케이터’), 어떤 알람은 하루를 감쪽같이 삼켜버린다(‘절차가 있습니다’). 김덕희의 환상성은 서사를 확장하고 현실을 재구성해내는 방편으로써 매우 성공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가 서사를 환상으로 몰아갈수록 더욱 현실 같은, 더욱 지옥 같은 낯익은 세계가 육박해온다. ‘전복’에서는 대학가 원룸 오피스텔을 통해 젊은이들의 소외를 보여주고, ‘절차가 있습니다’에서는 강고한 국민국가체제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한다. ‘하울링’에서는 가치를 잃은 현대인의 자화상이 그려지며, 4대강과 세월호의 상흔으로 채색된 ‘자망’에는 우리사회가 목숨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깔려 있다.

‘급소’는 신인작가 김덕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첫 인사로서는 아주 강렬한 소설집이다. 한 작가의 재능에 태도도 포함된다면 아마도 그는 더욱 근사한 소설들을 써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회의하는 미학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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