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서 하는 스마트폰 불빛이 멜라토닌 생성 억제해 수면 방해
뇌는 수면 상태서 장기 기억 작업, 적절히 자는 것도 공부의 일환
낮잠으로 보충할 수도 있지만 평소 최소한의 수면을 확보해야
경기 지역 초·중·고교에서는 다음달부터 '오전 9시 등교'를 전면 시행한다. 현재 중ㆍ고교생은 대개 오전 8시~8시 20분에 등교한다. 잠을 잘 시간을 좀 더 주고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을 수 있게 등교시간을 늦추기 위해 경기도교육청의 고육책이다.
맞벌이 부부 출근문제 등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기도교육청이 ‘9시 등교’를 전면 시행키로 한 것은 중·고교생들의 수면부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천의대 길병원과 서울대병원 공동연구팀이 인천 중·고교생 4,415명을 연구한 결과, 수면부족이 청소년들의 자살시도 및 자해와 관련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고교생 중 주말 보충수면시간이 길고, 우울지수가 높고, 학원에 있는 시간이 길수록 자살충동이 심화됐다. 연구팀은 “평일 수면시간이 7시간 미만인 청소년의 자살생각지수는 16.3으로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 청소년의 자살생각지수(12.0)보다 높았다”고 밝혔다. 고학년 여학생일수록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미만인 경우가 많아 이들 학생에 대한 가정과 학교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3수험생들은 한결같이 수면부족을 호소했다. 여고 3년생인 여학생은 “방학이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아 부족한 과목을 만회하기 위해 학원특강에 가는 중”이라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다 보면 새벽1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수능 3개월을 앞두고 수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수험생에게 필요한 수면법은 뭘까. 정신건강의학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짧은 시간에 숙면을 취하려면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치명적인 수면의 적’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눈으로 빛이 들어가 각성이 일어나 수면에 들기 어렵다”며 “잠이 들기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영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잠을 쫓는 일”이라며 “숙면을 취하려면 자기 전 컴퓨터, 스마트폰 등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은 어두워야 생성되는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빛이 방출돼 수면을 이룰 수 없다”며 “잠을 자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유했다. 김의중 을지대 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은 수면의 적”이라며 “음악을 듣거나 TV를 켜고 자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사춘기 이후 청소년들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성인보다 늦게 분비돼 2시간 정도 수면시간이 늦어지는데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수면부족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7, 8시간 정도 수면을 취해야 정상적인 신체활동이 가능한데 수험생의 경우 매일 2, 3시간 정도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해 수면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밀린 잠, 주말 1, 2시간 정도 채워라
평일에 취하지 못한 수면을 주말에 보충하면 효과가 있을까. 이유진 교수는 “잠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반드시 이를 보충하려 한다”며 “하지만 주말에 과도하게 잠을 많이 자면 수면리듬이 깨질 수밖에 없어 평일보다 1, 2시간 정도 늦게 기상하는 정도로 잠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김의중 교수는 “평상시 잠이 부족하면 우리 몸은 ‘수면부채(Slee Debt)’를 해소하기 위해 잠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주말에 장시간 잠을 자면 수면리듬이 깨지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낮잠을 잘 활용하면 수면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유진 교수는 “잠이 부족할 경우 점심식사 후 20~30분 정도 낮잠을 자면 수면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김미영 교수는 “밤에 잠자지 않으면 낮잠을 자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최소한의 수면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는 청소년들이 많다”며 “이런 학생들의 경우 3주 동안 매일 1시간 수면시간을 늘려도 큰 효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수면부족·과다…우울증ㆍ정신불안 증세일수도
부모들의 보살핌도 강조됐다. 김미영 교수는 “개인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를 수 있지만 잠을 자지 않는다고 반드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게임, 동영상 등을 시청하는 등 공부 외적인 일에 신경을 써 잠을 자지 않을 수 있기에 평소 아이가 효율적으로 시간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주 교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특징이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너무 많이 잠을 자는 것”이라며 “입시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우울증, 정서불안이 발생할 수 있기에 평소 아이들의 수면상태를 관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수험생에 있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 이유는 뇌가 수면상태에서 공부했던 것을 장기기억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며 “잠도 공부의 일환이기에 적절히 잠을 자는 수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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