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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실 너머의 진실

입력
2017.09.1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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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터넷에서 피투성이가 된 여중생의 사진을 보았다. 곧 사진 속 주인공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이며, 최근 부산에서 있었던 일임을 알게 되었다. SNS에서 관련된 사진을 더 볼 수 있었다. 누군가 환자의 시뻘건 환부와 부어 오른 눈두덩을 여과 없이 촬영해서 인터넷상에 유포했다. 두피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부종은 심했다. 나는 피해자가 당한 깊은 외상에 겁이 났고, 가해자의 적절한 처분과 현실 개선을 바랐다. 누구나 그 사진을 보면 그렇게 느꼈을 것이었다. 일명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다.

이제 나는 현장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생각했다. 이 사진은 매우 잔혹했지만, 실제 일어나는 사건들에 비추어도 이 사건은 잔혹한 것이었을까. 이 폭력은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드문 것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 학교 폭력은 한 해 1만 4,000건이 일어난다. 상해와 폭행 등의 강력 범죄는 한 해 37만 건이다. 신고된 상해만 하루 천 명이 넘게 치료받는다. 응급실에서 비슷한 장면이 매일 되풀이된다. 사람들은 사소한 이유로 타인의 신체를 어이없이 심하게 훼손한다. 나는 의사가 되어 오히려 사람이 사람을 폭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피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폭력의 불합리함과 잔혹성에 몸을 떤다.

이런 현장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극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이 사연과 피해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감 없이, “누가 누구를 때려 상해를 입혔습니다”가 어떤 광경인지 보여주면 된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보기 힘들며, 누군가가 사람을 이토록 쉽게 상하게 만든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므로, 이번 여중생 폭행 사건처럼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장 긍정적인 효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37만 건의 폭력은 적나라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가해자가 사진을 찍었고, 그 지인이 사진을 SNS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이것은 37만 건 중 하나의 폭력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피해자는 아직 14세이며, 폭행 이후 자신이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다. 주변 사람들은 당사자가 누군지 전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절대로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볼 수 없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선정적으로 피를 뒤집어쓴 사진을 소비했고, 그녀의 벌어진 환부와 퉁퉁 부은 눈두덩을 보았다. 꼭 이 사진을 봐야만 폭력이 나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우연히 알려진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가 받은 고통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 피해자는 특정되어 2차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으로 인한 대중의 반응, 폭력이 나쁘다는 취지, 관련 법안 개선 등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만, 피를 뒤집어쓴 사진이 인터넷을 함부로 떠도는 것만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사회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세상의 이면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만큼 힘이 센 것은 없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선정적인 방법은 대중을 피로하게 만들고, 2차 피해자를 양산한다. 게다가 대중은 그 사람이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겠지만, 오늘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피해자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윤리적인 면을 조율해서 피해 받는 사람 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공감을 사며 개선을 이루어나갈 수가 있을지. 이번 사건에서 모든 사람이 깊게 고민해볼 내용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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