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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숲속에서 소설 읽기

입력
2017.09.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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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의 자연휴양림에 버스가 도착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네 시간을 달려왔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숲이 주는 신선한 바람에 감탄했다. 숲에서 꿀맛 점심을 먹고 김훈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작가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손을 뻗어본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것과 별개로 작가의 강연을 듣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예전에는 잘 정돈 된 강연이 좋았는데, 이제는 마른 땅에 물이 제 멋대로 흘러가듯 즉흥성 가득한 강연이 점점 좋아진다. 작가는 내려오는 버스에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사는 동안 모든 힘을 다해 글을 읽고 정신을 경작하다가 비극적 죽음에 이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객석의 우리도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작가는 소설과 인생이 어떻게 얽혀 있다고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소설을 쓰면서 만난 수많은 인생들의 족적을 따라 디뎌보며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우리의 깨달음을 일구는 데 더 좋은 방법이었다. 우리는 이순신과 함께 저 망망대해 앞에 까맣게 밀려오는 왜선들을 바라보았고, 치욕의 계단에서 임금을 따라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작가가 조사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에 가지는 깊은 고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살면서 내 앞에 놓인 선택을 너무 쉽게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둘 사이에서 긴 고민을 했다는 작가. 그 결과 우리 독자들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우리 강토에 대한 애정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해가 지고 배정된 숙소에 들었다. 방문에는 작품 명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우리는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 듯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잠들기 전에 수행 할 과제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있을 낭독 대회 연습이었다. 늦은 밤까지 불은 꺼지지 않고 모든 방에서 소설 낭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건물 밖을 거닐며 풀벌레 소리와 함께 그 낭독을 들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여기에 모이게 하고 저렇게 절절한 낭독을 하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아침이 밝았다. 이번 소설낭독캠프의 중심 행사인 낭독 대회에 앞서, 내가 한시간 동안 콘서트를 진행했다. 한 달간 정성 들여 만든 노래 ‘공터에서’도 발표했다. 창작이란 게 그렇다. 창작자가 애초에 의도한 방향대로 완성되어가는 작품은 거의 없다. 작품 스스로 생명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증거다. 그래야 창작자를 떠난 작품이 독자들 사이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공터에서’를 처음에는 어른들이 들을 만한 노래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듬어갈수록 젊은 노래가 되어갔다. 나는 작품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었다. 결국 랩과 비트와 강한 외침이 섞인 노래로 완성 되었다. 어른이 이해할 가사에 청소년이 듣는 음이 붙었다. 이 부조화가 나는 마음에 든다. 젊은이들은 ‘공터에서’를 들으며 짧은 절규처럼 가버린 지난 세대를 얼핏 이해할 것이다. 또 그 황량한 장소에서 자신들의 생을 세워 가리라.

콘서트에 이어 소설낭독대회가 이어졌다. 참가자 모두 절절하게 낭독을 했고 객석은 소설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갔다.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는 어떤 참가자는 평소에 산모들에게 낭독해주는 문장을 암송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이 읽어줬는지 꽤 긴 본문을 다 외우고 있었다. 고통을 이겨내고 생명을 얻은 산모와 낯선 세상을 앞에 둔 아기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었을 것이다. ‘칼의 노래’에서 ‘공터에서’까지 여려 편의 소설 속 문장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객석을 덮은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반짝였다. 인생의 한 순간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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