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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땅의 변신, 도심 속 작은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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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땅의 변신, 도심 속 작은 전원주택

입력
2015.11.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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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富 아닌 삶의 방식 깃든 공간”

어린 자녀 둔 30~40대가 대부분

층간소음 없고 옥상에선 캠핑까지

도심 속 자투리 땅에 협소주택을 지어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협소주택 외관.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도심 속 자투리 땅에 협소주택을 지어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협소주택 외관.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11세ㆍ9세ㆍ7세 3남매를 둔 송병기(45ㆍ공무원), 정미라(43ㆍ주부) 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한복판에 협소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급매로 나온 낡은 단층주택을 1억6,500만원에 매입해 복층 집으로 만들었다. 정씨의 시동생이 건축가인 덕에 인건비를 절약한 덕에 2개월여간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총 1억2,000만원 정도다.

지난 3일 찾은 정씨의 집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이 동네는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30년 이상 된 빌라가 몰려 있는 터라 하얀 벽면에 담쟁이 넝쿨까지 있는 정씨 집은 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 이 동네 빌라에서 살았는데 아이가 3명이라 늘 층간소음으로 항의를 받을까 조마조마했다”며 “이웃 눈치 안보고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해주고 싶었고, 우리 부부도 노후에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어서 도심 속에서 미리 경험해 보기로 해 협소주택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의 집은 1층 전용 47.72㎡, 복층 38.2㎡에 불과하지만 공간은 알찼다. 1층엔 거실과 안방, 주방을, 복층엔 아이들 침실과 놀이방 등을 배치했는데 복층으로 오르는 계단 밑, 침대 밑 등 틈이 보이는 곳은 무조건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복층도 5각형 모양의 한 벽면은 책장으로 만들었고 다른 벽에는 선반을 적절히 배치했다.

관리비도 확 줄었다. 정씨는 “단독주택이 아파트나 빌라보다 관리비가 더 들어갈 것 같지만, 단열재에 신경을 써서 복층임에도 난방비가 절반 가까이(22만→12만원)줄었다”며 “옥상에 테라스가 있어서 도심에서도 캠핑분위기를 낼 수 있는 등 아파트나 빌라에선 상상도 못했던 일을 자유롭게 해 좋다”고 말했다.

복층으로 이루어진 협소주택 내부. 1층엔 거실과 안방을 위층엔 아이들 침실과 놀이방이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정미라씨는 "층간소음 걱정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복층으로 이루어진 협소주택 내부. 1층엔 거실과 안방을 위층엔 아이들 침실과 놀이방이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정미라씨는 "층간소음 걱정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복층 바깥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어 도심 속에서도 바베큐파티를 할 수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복층 바깥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어 도심 속에서도 바베큐파티를 할 수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한국. 그러기에 역세권, 좋은 학군이 있는 브랜드아파트는 일반 사람들의 로망이 돼 버렸다. 그 밑바닥엔 집이 가장 안정적으로 자산 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예전처럼 집으로 재산을 불리는 게 쉽지 않게 됐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중심엔 최근 1~2년 새 도심 속 자투리 땅을 찾아 ‘그들만의 집’을 집는 고집스런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치솟는 전셋값에 떠밀려 외곽으로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심으로 들어가 좁은 땅에 수직으로 집을 올리는 것이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단독ㆍ다가구주택 거래량은 지난해 14만6,000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10월까지 12만건을 기록하며 폭발적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수도권에 협소주택을 짓기 위해 주택거래를 한 수요도 상당수 포함됐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건축가인 조현진 조앤파트너스 대표는 “과거엔 지방으로 내려가 크게 단독주택을 짓거나 기존주택을 매입해 사는 방식이 많았다면 최근 들어선 도심 자투리땅이나 작고 낡은 주택을 매입해 협소주택으로 재탄생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어린 자녀를 둔 30~40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한창 하고 있는 나이라 교통 환경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수도권에 자리를 잡고, 자녀들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변형된 단독주택을 지어 산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집을 재산증식의 일종, 부의 상징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삶의 방식이 깃든 공간으로 인식하는 중장년세대가 늘어난 것도 작고 모양도 제각각인 협소주택의 탄생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송병곤 디자인일공 대표는 “주어진 땅에 맞춰 짓다 보니 집 모양이 삼각형이 되기도 하는 등 판상형에 벗어난 형태가 많지만 가족의 생활방식에 따라 집 구성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며 “기존 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환금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지만 협소주택 거주자는 평생 살 생각으로 지었기 때문에 팔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고려할 점도 많다. 짓는 과정 자체가 까다롭다. 자투리땅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니 마땅한 자리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도심에 있어 매입비용도 그리 싸지는 않다. 3.3㎡당 1,000만~2,000만원 정도 든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전용 50~65㎡ 땅 매입에만 2억원 이상 들 수 있다는 얘기다.

협소주택이든 대규모 단독주택이든 똑 같은 규제를 받는 것도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심인희 AAPA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인접한 집과 50㎝를 띄워야 하고 인접 도로폭과의 간격도 4m 이상으로 해야 하고 주차장법에 따라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점 등 주택 유형 등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가 아직 많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김주리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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