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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 때 모습으로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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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 때 모습으로 복원한다

입력
2018.02.28 16:3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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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 유관순, 안창호, 김구, 손병희, 한용운 등 무수한 독립지사가 잔인무도한 옥고를 치른 현장이다. 서대문독립문공원 한 쪽에 역사관으로 남은 서대문형무소가 1936년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문화재위원회가 최근 서대문형무소 종합정비계획을 심의해 조건부 가결한 데 따른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가 항일 의병을 가두려고 지은 근대식 감옥이다. 1908년 10월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섰다. 당시 수용 규모는 500여명. 3∙1운동으로 수감자가 늘어난 것을 비롯해 ‘수요’가 폭증해 세 차례 확장됐다. 1912년 서울 공덕동에 감옥이 신축되면서 ‘서대문감옥’이 됐다가 1923년 다시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을 바꿨다. 패망한 일제가 기록을 없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애국지사를 비롯한 4만여명이 수감되고 이 중 400여명이 잔혹한 고문으로 순국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설가 심훈은 투옥 당시 편지에서 이곳을 “생지옥”으로 묘사했다. 서대문형무소는 해방 이후에도 감옥으로 사용됐다. ‘서울형무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불리다가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 의왕으로 이전하면서 남은 터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당시 형무소를 헐면서 건물과 담장 일부만 가까스로 남겼다. 1988년 사적 324호로 지정됐고, 1998년 역사관으로 문을 열었다.

서대문형무소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1936년 당시 건물 배치 도면’을 기준으로 복원된다. 현재 약 2만 8,000㎡인 사적지 규모를 올 안에 5만5,000㎡로 늘리고, 2020년까지 건물 흔적 발굴 조사를 벌인다. 2021년부터는 구치감, 창고, 의무실, 공장 등 건물 중 역사적 의미가 두드러지는 건물을 골라 복원한다. 약 600억원의 복원 비용이 들어간다. 서대문형무소 옆에 짓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공사는 2020년 끝난다. 서대문형무소 복원이 마무리되면 독립문, 대한민국임시기념관과 함께 서울시내 한 복판의 역사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1936년 당시 서대문형무소 배치도. 문화재청 제공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1936년 당시 서대문형무소 배치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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