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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동물·이혼을 소재로 우리 시대를 들여다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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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동물·이혼을 소재로 우리 시대를 들여다 봤어요”

입력
2017.10.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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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당신의 신’

김숨 작가, 소설집 2권 동시 출간

데뷔 당시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했던 김숨은 박완서, 최인호 작가의 작품집을 만들면서도 매일 저녁 자신의 소설을 썼다. 작가는 “어떤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2,3개씩 떠올라서 실수할 때도 있었다”며 “지금은 조절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흥구 제공
데뷔 당시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했던 김숨은 박완서, 최인호 작가의 작품집을 만들면서도 매일 저녁 자신의 소설을 썼다. 작가는 “어떤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꺼번에 2,3개씩 떠올라서 실수할 때도 있었다”며 “지금은 조절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흥구 제공

김훈의 소설을 ‘문장의 세계’, 김영하의 소설을 ‘캐릭터의 세계’라고 요약한다면, 김숨의 소설은 ‘소재의 세계’쯤 되겠다. 철공소를 배경으로 산업사회 노동자의 삶을 그린 장편 ‘철’, 태초의 물질인 물, 불, 금을 의인화한 가족을 담은 장편 ‘물’,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통해 6·10민주항쟁을 그린 장편 ‘L의 운동화’ 등 김숨의 소설은 사물을 통해 우리 시대 단면을 묘파한다.

작가 김숨이 소설집 2권을 한꺼번에 냈다.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나는 염소…’), ‘당신의 신’에서 작가가 천착한 소재는 각각 동물과 이혼. 생뚱맞아 보이는 두 책이 동시에 탄생한 배경은 이렇다. 1997년 등단 후 장편 9편, 소설집 6권을 낸 이 부지런한 작가는 원고 게재 의뢰를 받기 전 단편소설 몇 편을 써두고 의뢰가 들어오면 ‘때와 지면에’ 맞춤한 소설을 내준다. 그렇게 발표한 단편 중 소재와 문체가 어울리는 작품을 추려 소설집을 내는데, 원래 이번에 낼 책은 ‘나는 염소…’였다. ‘동물 테마’에 맞지 않은 발표작들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한데 올해 초 발표한 단편 ‘이혼’을 읽고 출판사가 결혼과 이혼을 테마로 한 단편집을 또 한 권 내자고 제안했고, 마침 쓰고 있던 단편과 책으로 묶지 않은 발표작을 엮어 ‘당신의 신’이 출간됐다.

2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평소보다 편집자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편집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줬고 설득 당할 만한 근거를 얘기해 줬다. 소설 문장에서 따온 책 제목도 편집자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인터뷰 한 시간 전 카페에 도착한 그는 “출간하려면 한참 남았다”는 서간체 장편소설을 퇴고하고 있었다.

‘나는 염소…’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쓴 단편 6편이 묶였다. 쥐 잡는 에피소드를 다분히 연극적인 풍경으로 담은 ‘쥐의 탄생’(2009)부터 ‘곤충채집 체험학습’(2016)까지 김숨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각 동물의 특징과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인물,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의 한 장면을 교차해 이야기를 이끄는 기술이 가히 달인의 경지다. 여왕벌과 수벌의 교미와 양봉업자 화자의 치정을 유려하게 묘사한 ‘벌’은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소설이다. 작가는 “어릴 적 할아버지가 집에서 양봉을 했다. 꿀을 채취하는 장면, 벌에 쏘였을 때 충격,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강렬하게 각인돼 있었다”며 “단편 ‘벌’은 언젠가 장편소설로 다시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 한 편을 얼마 만에 완성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장편 ‘철’의 물리적인 집필 기간은 몇 개월이지만, 내가 조선소 세워진 곳에서 태어났고 내 아버지가 조선소를 다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유년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있었던 거다. 이 소설집 속 단편 ‘자라’도 어린 시절 기억이 만든 거다. 강렬한 인상, 공포, 충격이 이 작품집의 시작이다. 이야기가 먼저 내 안에서 생성되고, 쓰다 보면 관련 지식을 저절로 찾게 됐다. 작정하고 공부하는 게 아니다.”

작가 김숨이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당신의 신'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김흥구 제공
작가 김숨이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당신의 신'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김흥구 제공

‘당신의 신’은 이혼에 관한 세 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작가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과 상상을 덧붙여 한국사회 결혼제도와 결혼에 관한 인식을 담는다. 김숨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고민을 징그럽게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책은)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책 제목은 첫 단편 ‘이혼’의 한 문구에서 따왔다. 이혼을 앞둔 민정과 남편 철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결혼 생활의 양태가 펼쳐진다. 사진작가인 철식은 아내가 아이를 유산하고, 유방암 진단을 받던 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사진에 담으러 지방에 머문다. 남편이 자신의 고통에 그토록 무감각한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민정은 이혼을 제안하며 말한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김숨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혼이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 합의이혼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혼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제도를 벗어나 더 완전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혼을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독자가 책에 실린 수많은 이혼 사례를 작가 경험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을까. 김숨은 순한 얼굴로 말했다. “독자가 작가 삶을 어떻게 볼까, 이게 두렵지는 않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나에게 온 것이고, 내가 소설에서 어떤 성취를 보였느냐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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