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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맛있는 밥을 짓는 방법

입력
2015.03.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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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태극기 달기 운동에 나섰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태극기를 아무리 게양한들 애국심이 늘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조국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때만 애국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죽어도 영원히 이어지는 불멸성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애국심은 삼면이 바다이고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따위의 관념으로만 표현된다. 성 도착증 환자가 팬티나 교복 따위에만 성욕을 느끼듯이, 한국인의 애국심은 무언가 도착적인 형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우리나라가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렷다. 왜 그럴까.

재난의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상 모든 문명은 불평등 때문에 몰락했다고 해도 좋다. 로마제국 말기의 로마인들은 차라리 야만족의 지배를 달가워했다. 로마의 사회구조에 약탈이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로마가 망한 원인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상인을 쉽게 내쫓을 수 있다. 더 부유한 자의 소유권 주장으로 덜 부유한 자는 모든 재산을 잃는다. 약탈의 제도화다. 도시 상인들은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 단기간에 이윤을 내고 빠지기를 선호한다. 언제 가게를 빼앗길지 모르기에 장기적인 장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한 노동자를 가혹하게 다루며 소비자에게는 가짜 상품을 판다. 누구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

다산은 ‘통색의’라는 글에서, 일부 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백성이 폐기되었다고 했다. 폐기된 백성들은 나랏일에 관심을 접고 술이나 마시며 대충 산다. 그래서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 국가가 쓸 재원이 마른다는 뜻이니, 조정은 그의 진단을 심히 여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읍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다산 사후 조선을 여행한 비숍은 해변에 고래가 떠밀려오자 마을 사람들이 고래를 바다로 밀어버리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고래를 해체해 봐야 소수의 권력자에 뺏기기 때문에 아예 마을 재산을 버린 것이다. 포경업도 사라지고 기술은 맥이 끊긴다.

김낙년 교수의 논문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국내 전체 소득의 48%를 가져간다고 한다. 하위 40%는 단지 2%를 가져갈 뿐이다. 충격적인 격차다. 또한 노동에 의한 소득보다 금융과 부동산을 통한 소득이 훨씬 많다.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여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마지못해 일할 뿐 창조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아이디어와 성과를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관이 만연하면 사회의 생산성은 떨어져 성장이 멈춘다. 또한 불평등은 상위 소득자에게도 부도덕이 깃들게 한다. 특권적 소수는 사치에 빠져 타락하며 모든 일을 남에게 시키므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과 협잡에 빠진다. 몰상식한 갑질을 부리면서도 반성을 모른다. 그런 저열함이 퍼지면 아무도 공공의 일에 나서지 않게 된다. 부를 독점한 소수는 병역조차 회피하는데 누가 선뜻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는가.

따라서 불평등 해소는 국가의 의무다. 소득 수준에 따라 조세를 거두고, 복지를 확대하며, 최저 임금을 올리고, 국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함이 아니다. 국가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함이다. 불평등이 해소되면 태극기 게양을 강제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자연히 국가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밥짓기 달인 이능금씨는 이런 말을 했다. “밑밥은 불이라는 외압과 쌀의 무게라는 내부의 압력을 동시에 받는다. 낙오자 쌀이 생기면 손해니까 밥을 한 번 섞어주어야 한다.” 과연 옳은 말이다. 밑밥은 밥이 아닌 누룽지가 되어가고 있다. 윗밥은 차갑고 수분이 너무 많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지금 뚜껑을 열어 골고루 섞어주어야 한다. 아직까진 기회가 있다. 더 뜸을 들이면 밥이 타버릴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ㆍ밴드 요단강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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