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7.06.28 17:44
수정 : 2017.06.28 18:50

“내 생애 첫 퀴어축제…내년엔 엄마와 함께 올래요”

[사소한소다]<41>'보수의 성지'대구 퀴어문화축제를 가다

등록 : 2017.06.28 17:44
수정 : 2017.06.28 18:50

[사소한소다]<41>’보수의 성지’ 대구의 퀴어문화축제를 가다

시민들이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 마련된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부스들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24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1,000여명의 참가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대구 퀴어축제는 서울 이외 지역에서 열리는 국내 유일의 성소수자 축제다. 보수적인 도시의 한복판에서 열린 데다, 최근 군형법92조6 논란 등 성소수자 이슈가 부상한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열린 퀴어 문화축제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번 행사에도 1,000여명이 참가했다.

서울에서 대구로 원정을 가는 성소수자들도 적지 않았다. 매년 대구행 ‘퀴어버스’를 운영하는 성소수자 단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45인승 버스 3대를, 팟캐스트 방송 ‘엘살롱’은 올해 처음으로 45인승 버스 1대를, 각각 대구로 보냈다. 행사 당일 오전 9시, 서울 종로 남인사마당에서 행사지인 대구로 향한 버스에 올라 이들을 따라가봤다. 이 가운데선 꽃머리띠를 한 젊은 남성과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 등 축제에 어울리는 다양한 복장도 눈에 띄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마련된 포토존.

인분 투척, 행진 방해… “혐오세력이 때리면 어떡하죠”

대구행 버스는 ‘기대반 우려반’

하지만 버스 안에서 참가자들은 대부분 기대반 우려반의 모습을 보였다. 이번 대구 퀴어축제가 세 번째라고 전한 한 참가자는 동승자에게 “사람들이 대구 퀴어축제에 간다고 하면 조심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과 일어날 수 있는 충돌 가능성 때문이었다.

대구와 서울의 퀴어축제는 사뭇 다르다. 지난 2015년부터 서울 시청광장으로 무대를 옮긴 서울 퀴어문화축제는 축제 참가 부스들이 원형으로 설치되고 그 부스 바깥은 다시 경찰들이 에워 싸 혐오세력과의 접촉이 원천 봉쇄됐다. 지난해에는 아예 시청 광장 입구를 경찰이 막고 일일이 혐오세력을 걸러냈다. 이런 경찰의 철벽수비는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했지만, 반면에 일반 시민들과의 접촉까지 차단해 ‘그들만의 축제’로 남게 만든다는 비판도 받았다.

반면 대구의 경우 유동인구가 많은 중구 동성로 거리에 부스가 한 줄로 늘어섰고, 공연이 이뤄지는 무대는 동성로 사거리 한가운데에 자리했다. 일반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 만큼 혐오세력을 막기도 어렵다. 실제 지난 2015년 대구 퀴어축제 당시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를 막으려는 보수 기독교 신자 일부가 행렬을 막고 인분을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들은 지난해 축제 때에도 축제 행렬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부모모임' 부스에서 한 참가자가 포스트잇을 적고 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퀴어문화축제'의 성소수자부모모임 부스에 '부모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이란 질문과 관련, 참가자들의 답변이 붙어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께 축제 장소인 동성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동성로 입구 앞에 늘어선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에선 15개 중대를 축제 현장 주변 골목마다 배치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대구 퀴어축제 조직위는 인권침해감시단을 운영하며 성소수자들의 사진 무단 촬영이나 충돌을 제지했다. 올해도 반동성애단체들은 행사장 인근에서 24시간 기도회를 열었고, 행사장 주변에서 반동성애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개막 행사에서 진행을 맡은 한 조직위원은 “올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는 마지노선의 해라고 생각해서 혐오세력들은 더 격렬하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퀴어문화축제' 에 참가한 영남대 성소수자 모임 '유니크'의 부스가 설치돼 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퀴어문화축제'의 한 부스에서 진행중인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기존 성교육표준안에 대한 폐지 서명 용지가 비치돼 있다.

대학 모임을 넘어… 경상지역 성소수자 모임은 급성장 중

이번 대구 퀴어축제에선 최근 1~2년 사이 새로 생긴 경상 지역 성소수자 단체들의 부스가 두드러졌다. 부산지역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QIP’은 부산대 성소수자 모임에서 시작한 이후 지난해 부산 지역 전체로 활동을 확대했다. 이번 대구 행사에 처음 참여한 QIP의 회원인 인수(가명)는 “아무래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부산에서 성차별적인 성교육표준안 문제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지역에서도 더 활발하게 활동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연대모임도 최근 활발해졌다. ‘대구경북성소수자인권모임’과 지난해 영남대에서 만들어진 성소수자모임 ‘유니크’는 이번에 함께 만든 지방 퀴어 웹진 ‘니나내나’ 1호를 부스에서 배포했다. 유니크의 홍보부장 펭귄(가명)은 “아직 대구의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성소수자들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 중 하나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내년에는 경상권 성소수자 모임 학생들과 함께 서울 퀴어축제에 참가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퀴어문화축제'의 무대에서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쇼걸) 쿠시아 디아멍이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나가던 대구 시민도 ‘우리는 모두 사랑합시다’

대구시민들도 축제 부스들을 구경하고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함께 감상했다. 팟캐스트 엘살롱의 부스를 운영한 진행자 개꽃(29)은 “퀴어축제인지 모르고 오신 중년 여성도 부스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합시다’라고 직접 쓴 피켓을 자전거에 달고 가셨다”며 “서울처럼 폐쇄적인 공간에서 우리만의 축제로 남기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어서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는 오후5시부터 약 1시간30분 동안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출발, 봉산육거리, 중앙네거리 등을 돌아 광장으로 돌아오는 순서로 진행됐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행진을 주도하는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나야나’ 등의 노래를 부르며 대로를 걸었다.

일부 반동성애단체 사람들이 행진을 따라 다니며 퍼레이드 참가자나 도보의 시민들을 향해 피켓을 들기도 했다. 이중 일부가 퍼레이드 참가자의 사진을 찍으려다 인권감시침해단의 제지를 받고 실랑이를 하기도 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지난 24일 대구 동성로에서 시작된 퍼레이드 행렬. 퍼레이드 참가자 양 옆으로 반동성애 진영이 피켓을 들고 맞불 시위를 이어갔다.

24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9회 퀴어문화축제'의 마지막 순서인 퍼레이드 행렬 옆에서 반동성애단체 회원들이 반동성애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지난 24일 대구에서 열린 '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서 행진 트럭 위에서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이 '아들아 엄마는 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난 뒤 처음으로 대구 퀴어축제에 참가했다는 대학생 와조(가명 25)는 “퍼레이드를 하면서 너무나 흥겨운 반면 경찰의 질서유지선 하나를 두고 건너편에 있는 내 또래의 시위대를 보면서 내가 아는 사람도 반동성애 시위대에, 혹은 퍼레이드 행렬에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음에는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엄마와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ㆍ영상=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편집 김창선PD Changsun9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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