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법ㆍ도덕 초월한 가상공간 ‘캐릭터 커뮤니티’

알림

법ㆍ도덕 초월한 가상공간 ‘캐릭터 커뮤니티’

입력
2017.07.05 04:40
0 0

폐쇄적인 온라인 역할극 놀이

참가자가 다양한 주제로 전개

인천 초등학생 살해혐의 박모양

“사체 일부 가져달라” 대화 두고

변호인 “캐릭터 커뮤 활동일 뿐”

검찰 “잠재된 잔혹함 현실 표출”

8세 여자 초등학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한 혐의로 고교 자퇴생 김모(17)양이 지난 3월3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8세 여자 초등학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한 혐의로 고교 자퇴생 김모(17)양이 지난 3월3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인천지법 324호 법정, 3월 고교 자퇴생 김모(17)양의 8세 초등학생 살해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18·재수생)양 재판. “박양이 김양에게 먼저 숨진 초등학생 사체 일부를 가져다 달라고 요구했다”는 검찰 주장에, 변호인은 “전리품(망자 소지품)과 시신 일부를 나눠 갖는 가상 대화 일부”라고 반박했다. 인터넷 가상 공간에서 김양이 ‘뭐가 필요하냐’고 묻자 현실이 아닌 가정을 전제로 답한 허구의 대화라는 것이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재판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김양과 박양 간 ‘대화’의 정체를 두고 검찰 변호인 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은 “사체를 주고 받겠다는 현실 속 대화로 둘이 공범이라는 결정적 증거”라는 주장인 반면, 변호인은 “인터넷 캐릭터 커뮤니티 속 대화로 현실과 무관하다”고 맞선다. 한마디로 ‘현실 대화냐, 가상 대화냐’가 쟁점으로 떠오른 셈이다.

변호인 쪽이 말하는 가상 대화는 ‘캐릭터 커뮤니티(커뮤)’ 활동을 이른다. 인터넷 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뤄지는 역할극 일종으로, 특정 상황에서 각자 캐릭터를 정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행동하는 가상 놀이다.

놀이 방식은 간단하다. 누군가 ‘학교에 좀비들이 나타났다’는 상황을 정하면 ‘자캐(자작 캐릭터)’를 만든 신청자들이 모여드는데, 이들은 자신 캐릭터로 ‘로그’라고 불리는 글과 그림을 도구로 2~5일, 길게는 몇 달씩 이야기를 이어간다. 얘기가 완성되면 곧바로 커뮤니티는 폐쇄된다.

주제는 특정 사건 범인을 함께 찾는 추리상황극이나 각종 판타지부터 동성애, 선혈이 낭자하는 잔혹한 고어(Gore)물까지 제한이 없다. 근친살해, 매춘, 아동학대 등 범죄가 되거나 자극적인 상황이 주어지기도 한다. 캐릭터들끼리 죽이는 일도 다반사다. 현실의 도덕과 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운영방식은 지극히 폐쇄적이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들어온 일부만의 세상으로, 외부인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단속도 사각지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가 “이처럼 폐쇄된 곳에서 게시되는 내용물은 신고가 없으면 접근조차 어렵다”고 할 정도다.

문제는 커뮤 주력이 10, 20대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다 보면 현실과 가상세계 구분이 모호해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놀이가 진행 중이거나 끝난 뒤 오프라인에서 따로 만나기도 하는데, 가상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 현실에서 대화나 행동을 주고 받기도 한다. 6년 전 커뮤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접은 김모(26)씨는 “일부 잔인하거나 야한 설정 커뮤도 문제지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활동을 그만뒀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강조하는 입장은 “설사 가상 대화라는 걸 인정하더라도 오히려 이런 활동이 잠재된 잔혹함을 현실로 표출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가상 활동에만 초점을 맞춰 “가상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변호인 논리와는 배치된다.

주범인 김양의 정신상태 역시 쟁점이다. 변호인은 심신미약, 검찰은 사이코패스 가능성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4일 김양 재판에서 검찰은 전문가들의 심리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심신미약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김양은) 현실 검증력 온전히 유지되고 사고 및 지각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라면서 “다중인격 증상은 본인이 필요에 따라 꾸며냈을 가능성이 크고, 정신장애 가능성이 낮으며, 사이코패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