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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거부권 정치’의 조짐

입력
2015.03.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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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기술발전의 성과이더라도

정책 결정과 집행 무조건 막아서야

비판과 견제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일본 기업의 임금인상 잔치가 시작됐다. 어제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와 히타치제작소, NTT 등이 기본급과 상여금 양쪽으로 사상 최고의 임금인상을 노조에 약속했다. 또 파나소닉과 도시바(東芝) 등 대형전자업체 6사 모두 사상최고의 기본급 인상을 제시했다. 지난해 영업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기업이 잇따르고, 히타치처럼 사상최고의 영업이익을 실현한 기업도 적잖아 충분히 예고됐던 움직임이다.

일본 기업의 대폭적 임금인상은 그 동안 회의론이 무성했던 아베노믹스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임을 보여준다. 최대 노조단체인 렌고(連合)가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제 선(善)순환 전망이 밝아졌다고 밝힐 정도다. 임금인상이야말로 아베노믹스가 쏜 ‘세 개의 화살’에 덧붙여 본격적 선순환 구조로의 진입을 알리는 ‘네 번째 화살’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장기집권 길이 열리고 있다는 점만 빼면 부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눈을 안으로 돌리면 이런 부러움이 더욱 커진다. 7일의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청와대와 야당이 때아닌 경제정책 논쟁을 벌이고 있다. 마치 대선을 앞둔 때처럼 서로 다른 경제정책을 내세워 국민 판단을 구하는 듯한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지금은 큰 갈래의 정책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정책 집행의 시기다. 따라서 야당의 역할은 개별 정책에 대한 찬반과 양보 수준을 결정하는 데 한정돼 있다.

청와대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멍석을 깔아준 것까지는 좋았다. 여전히 국민적 유행어로서 위력을 떨치는 ‘소통’을 위해, 권력은 그 정도의 금도(襟度)를 보이면 그만이다. 문 대표가 무슨 말을 하든 옳고 그름을 따질 이유가 없다. 내용면에서 실질적 합의라고는 없었던 청와대 회동이 국민 기억에 남길 것은 어차피 모양새뿐이다. 문 대표가 주장한 ‘소득 주도 성장론’이 뭐가 새삼스러워 청와대가 ‘일자리 중심 성장론’으로 받아 칠까. 소비ㆍ투자 확대와 소득 증대, 고용 확대가 경제 선순환 구조의 핵심 고리여서 어디서부터든 성공하면 동일한 효과를 낸다. 문제는 어디서냐가 아니라 그 시작을 성공시킬 구체적 방법론이다. 야당의 주장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일부 방법론이 포함됐지만, 안 그래도 비용 절감에 목마른 기업의 부담으로 보아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정부가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고, 그것도 일본 등에서의 실패 사례에 비추어 깜짝 놀랄 만한 액수여야 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그런 엄청난 정책은 아베노믹스처럼 나중에 집권해서 시도할 것이다. 정부의 일자리 중심 정책 또한 구체적 방법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반발할 수 있지만, 바로 그래서 정부의 관련 법안에 대한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청와대 회동이 야당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어 날로 뚜렷해지는 ‘거부권 정치(Vetocracy)’양상을 희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국가질서의 기원에서 설파한 개념이다. 한때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던 야당과 언론, 시민단체 등의 권력 감시ㆍ비판ㆍ견제가 지나친 단계에 접어들어 지도력 후퇴와 정책결정 지연을 부른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기능부전에 빠지고, 하루가 다른 빠른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막대한 피해는 사회전체가 짊어지게 된다. ‘극단적 단순화 세력’의 득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화 30년 가까운 한국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돼 이명박 정부에서 강화되고, 박근혜 정부 들어 굳어진 무조건적 권력 비판 행태, ‘만사가 청와대 탓’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정책이 순탄하게 결정돼 집행된 예가 드물다. 민주화와 기술발전이 가져온 정치문화의 성숙으로 곱게 봐 넘기기 어렵다. 민주주의와 중우정치를 가르는 얇은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토 권력’의 절제가 요구된다. 그 핵심인 야당의 절제가 우선임은 물론이다. 수권정당 이미지를 강화하는 야당이 그런 빈 껍데기 권력을 잡으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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