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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어딜 가야 먹을게 많지…’ 새들도 무리에서 맛집 정보 얻어요

입력
2018.06.2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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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충분히 먹지 못한 개체가

배부른 동료 옆에서 밤 지내고

다음날 먹이 구한 장소 따라가

강원도 철원군의 논 위에서 쇠기러기들이 무리를 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강원도 철원군의 논 위에서 쇠기러기들이 무리를 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가로수와 전깃줄에 앉아 재잘거리는 수백 마리의 제비들과 잠을 자기 위해 황혼에 물든 취침장소로 모여드는 수백 마리의 민물가마우지들. 호수의 수면에서 일제히 날아 오르는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 군무와 시골의 농경지에서 만난 되새의 대군.

이러한 새의 무리를 보고 있으면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새는 왜 정해진 시기에 무리를 짓고, 어떤 새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새는 이동과 월동, 번식을 위해서 일부 기간만 무리생활을 합니다. 반면 오목눈이와 물까치처럼 협동번식을 하기 위해 연중 무리로 지내는 새들도 있죠. 같은 종이 아닌 다른 종의 개체들끼리 무리를 짓기도 합니다.

큰 무리 이루고 잠 자는 이유를

최근 연구에선 ‘체온 유지’보다

생존 최우선인 ‘포식자 경계’로

강원도 강릉의 한 농경지에서 되새 무리가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인근 나무로 날아가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강원도 강릉의 한 농경지에서 되새 무리가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인근 나무로 날아가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길 잃지 않고 서로 날기 쉽게 도와준다

우리나라는 가을이 되면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마친 겨울 철새들이 찾아옵니다. 저녁 무렵 하늘에는 대형조류인 기러기류와 두루미가 V자의 편대를 이루고 농경지에 내려앉고, 소형조류인 되새, 검은머리방울새, 쑥새들도 무리를 지어 산 넘고 물 건너 우리나라를 찾아오죠. 봄(4, 5월)과 가을(9, 10월)에는 갯벌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도요새 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여름철새인 제비, 개개비, 큰유리새도 봄에 무리를 지어 찾아와서 번식을 마친 후 그 해 태어난 새끼들과 함께 무리를 이루고 동남아시아로 떠납니다. 이들은 장거리 이동 시 길을 잃지 않도록 무리를 짓는 것이죠. 또 V자 모양으로 무리를 지어 날면 가장 앞에 날아가는 리더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주어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보다 70%가량 쉽게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리더는 계속 바뀝니다.

대부분 새는 이동ㆍ월동 위해 군집

오목눈이ㆍ물까치처럼 다른 종이

먹이활동 위해 항상 붙어살기도

민물가마우지들이 경기 수원 화서동 '서호 인공섬'의 나무위에 잠을 자기 위해 모여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민물가마우지들이 경기 수원 화서동 '서호 인공섬'의 나무위에 잠을 자기 위해 모여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모여서 잠을 자면 리스크가 분산된다

취침을 위해 모이는 새들을 보면 낮에는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밤이 되면 다시 모여 큰 무리를 이루고 잠을 잡니다. 취침장소는 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조류는 하천변 또는 저수지나 논둑의 제방 부근, 소형조류는 대나무 숲이나 갈대밭에서 무리로 잠자리에 듭니다.

보통 무리가 겨울철에 빈번히 관찰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추위로부터 잃는 열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새들이 먹이를 찾으러 먼 곳까지 이동했다가 다시 잠을 자려고 돌아오면 이동에너지가 더 많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더 일리 있는 설명은 무리가 포식자의 성공률을 감소시킨다는 연구입니다. 야간에 혼자 있으면 야행성 맹금류나 포유류가 가까이 접근해도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서로 떨어져 있으면 포식자에게 차례로 잡혀 먹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 마리가 함께 있으면 눈과 귀의 수가 많아져서 포식자의 접근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죠. 처음 한 마리가 당하더라도 나머지는 도망칠 수 있습니다. 이는 생태학자 로버트 켄워드의 ‘참매와 비둘기의 연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포식자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게 최우선이라는 얘깁니다.

충남 서천 유부도갯벌에서 물이 빠지자 도요새 무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충남 서천 유부도갯벌에서 물이 빠지자 도요새 무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그렇다면 바다나 해안에 사는 새들은 어떨까요. 도요새들은 갯벌에서, 해양성 조류는 해수면 위에 떠서 많은 개체들이 함께 잠을 잡니다. 육지로부터 떨어진 갯벌이나 수면 위라면 포유류의 위험으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취침장소인데 왜 함께 잘까요.

새의 먹이는 시간적ㆍ공간적으로 불규칙적이고 불연속적으로 분포합니다. 종자나 과실의 성숙, 곤충의 발생, 물고기의 이동은 계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들은 언제, 어디에 가면 먹이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항상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취침장소에는 먹이를 충분히 먹은 새도 있고 굶주린 새도 있습니다. 새들은 취침장소에서 서로를 확인하면서 “저 녀석은 어제 좋은 먹이장소를 찾은 것 같아, 그렇다면 내일은 그를 따라가 봐야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날 아침, 전날에 먹이를 찾지 못한 새는 성공한 새를 따라 가죠. 이것은 동물행동 생태학자 피터 워드와 아모츠 자하비가 발표한 ‘무리의 정보교환’에 나온 내용입니다.

인천 옹진군 무인도에 집단으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들이 사람이 접근하자 무리를 지어 배설물을 뿌리며 공격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인천 옹진군 무인도에 집단으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들이 사람이 접근하자 무리를 지어 배설물을 뿌리며 공격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번식 위해 집단으로 둥지를 방어한다

집단으로 취침하는 새들도 있지만 집단으로 번식하는 새들이 있습니다. 섬에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와 내륙의 나무 위에서 번식하는 백로류입니다. 왜 이들은 집단으로 번식할까요? 섬에는 포유류가 없기 때문에 괭이갈매기가 지상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더라도 안전이 보장되는 좋은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집단으로 번식하는 백로류도 포식자로부터 그다지 방해를 받지 않죠.

하지만 이들 역시 매 등 맹금류로부터의 공격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들은 번식지에 포식자나 나타나면 많은 개체들이 날아 포식자 주위를 맴돌면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배설물을 투하하면서 집단으로 둥지를 방어합니다. 괭이갈매기는 심지어 사람의 머리를 쪼면서 공격하기도 합니다. 즉 혼자로는 포식자를 방어하지 못하지만 집단으로 알과 새끼를 방어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겁니다.

가창오리 무리가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 사이 금강호에서 저녁 무렵 먹이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비상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가창오리 무리가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 사이 금강호에서 저녁 무렵 먹이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비상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먹이를 위해서라면 종을 초월해서 모인다

무리는 항상 동일 종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철 100여 마리의 붉은머리오목눈이 무리에는 소수의 오목눈이와 박새류가 따라 다니며 함께 먹이를 찾는 모습이 종종 관찰됩니다. 이렇게 다른 종들끼리 혼군을 이루고 생활하는데 경쟁은 없을까요? 새들이 먹이를 탐색하면서 동시에 경계행동을 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때문에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덤불이나 수풀의 아랫부분에서 씨앗이나 열매를 찾는 동안 오목눈이와 박새류는 나무 위에서 보초를 서죠. 오목눈이와 박새는 맹금류가 나타나면 경계음을 내주고, 이 때 모두가 함께 도망치거나 숨습니다. 덕분에 오목눈이와 박새류는 겨울철 귀한 먹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이들이 생활하는 나무 위가 아닌 바닥에 있는 곤충이나 씨앗을 먹어야 하는데 이를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발견해주는 겁니다.

강원도 평창의 오대천에서도 비오리와 백로들이 혼군을 이뤄 물고기를 잡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강원도 평창의 오대천에서도 비오리와 백로들이 혼군을 이뤄 물고기를 잡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2010년 10월 강원도 평창의 오대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관찰됐습니다. 비오리 22마리와 백로과 조류 18마리가 혼군으로 함께 물고기를 잡는 것을 목격한 건데요. 비오리 무리는 오대천의 하류에서 상류 여울 쪽으로 물고기를 몰고, 백로과 조류들은 여울 쪽에서 물고기들의 길목을 막고 있었습니다. 비오리 무리는 백로과 조류들이 퇴로를 차단한 물속에서 물고기 무리를 동시에 공격하고, 백로류 18마리도 비오리 무리가 몰고 온 물고기들을 먹을 수 있었죠. 백로류 18마리가 100초 동안에 잡은 물고기는 총 19마리에 달합니다. 이러한 혼군의 물고기 사냥은 10분 동안에 7번이나 반복됐습니다.

물까치들이 경기 화성 발안지역에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물까치들은 협동번식을 위해 연중 무리생활을 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물까치들이 경기 화성 발안지역에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물까치들은 협동번식을 위해 연중 무리생활을 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무리 내 개체는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을 한다

조류를 포함한 포유류 대부분의 무리 내 개체 중 자신의 위치를 포식자에 노출시키면서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행동에는 이타적인 의도만 들어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혼자 먹이를 찾고 생활하는 것보다는 무리를 돕는 것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의 생존뿐 아니라 무리를 지어 생활하면 새끼를 보호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죠. 상대적으로 배부른 개체가 이타적 행동을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경기 안산 시화호 갈대밭에 참새들이 잠을 자기 위해 갈대밭으로 모여들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경기 안산 시화호 갈대밭에 참새들이 잠을 자기 위해 갈대밭으로 모여들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만일 무리 내의 모든 개체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개체 간에 갈등과 알력이 생기고 구성원 전원에게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무리는 형성되지도 않습니다. 또 그러한 개체가 있다면 이미 무리에서 배제됐을 겁니다. 그래서 무리의 개체는 항상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김창회 국립생태원 생태조사연구실 연구지원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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