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육아 분투기] 아파트 실내놀이터 이야기

입력
2016.02.04 10:47
0 0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실내놀이터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2009년 준공 이후로 실내놀이터는 방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설계 당시 이 공간의 용도는 아파트 어린이집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방도 있고, 빔프로젝트도 있고, 화장실도 아이들이 이용하기 좋게 되어있다. 하지만 어린이집 허가를 얻지 못했다. 화재 시 아이들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어린이집은 1층에 있어야 하는데, 이 공간은 설계도면상 3층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건설사는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이 아파트는 언덕의 경사면에 세워져 있어 지대가 낮은 아파트 남동쪽에서 보면 3층이지만, 지대가 높은 북서쪽에서는 3층이 1층이 된다. 그래서 2층까지는 주차장, 주거공간은 3층부터다. 아파트 주민들도 산책로와 놀이터, 정문과 각 동 현관이 있는 3층을 사실상 1층이라 생각하며 생활한다. 건설사도 도면상 3층이 사실상 1층이기에 어린이집 허가가 날 것이라 봤을 것이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1층에 있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관리소장과 몇 번 면담을 했다. 관할구청 담당자와도 수 차례 전화를 했지만 모두들 도면상 3층이라는 사실만 강조했다. 가정 어린이집도 이 아파트에서는 만들 수 없다. 사실상 1층인 세대도 도면상 3층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어린이집 허가 규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시설을 만든 건설사와 실제가 어떻든 간에 서류상 안되면 안 된다는 공무원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린다. 아이들은 좋은 시설을 두고 매일 아침 왕복 10차선 대로를 건너 승합차를 타고 다른 동네 어린이집으로 간다.

그렇게 5년 동안 이 공간은 폐쇄되어 있었다. 관리소장에게 실내놀이터로 개방하자고 건의를 하니 어린이집으로 허가가 나지 않는 공간을 실내놀이터로 쓸 수 있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청에 다시 질의를 하니 실내놀이터로 이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어린이집은 안 되는데 실내놀이터는 된다니.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지만 서류와 절차 앞에서 상식은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실내놀이터로 개방해 달라고 관리사무소에 요청을 하자 이번에는 원래 어린이집 용도였던 공간을 실내놀이터로 이용하려면 입주민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애초부터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데 그런 절차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민주주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가 아니던가. 공청회 개최 후, 입주자 카페에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공청회에는 아주머니 한 분과 나, 그리고 관리사무소 총무와 소장 네 명만 참석했다. 소장은 실내놀이터 운영을 위해 관리 직원 인건비와 전기세, 수도세, 보험료가 필요한데 사용자부담원칙에 따라 이용자들이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경로당은 사용자부담원칙이 지켜지냐고 물었다. 경로당은 경로우대차원에서 모든 비용을 아파트 관리비에서 충당한다고 했다. 1,500세대가 한 달 실내놀이터 운영비 최대 100만원을 부담하기 위해서는 666원만 더 내면 된다. 직원을 고용하지 말고 부모들이 동호회를 만들어 관리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관리사무소는 그런 방법을 믿지 않았다.

입주자 카페에서는 실내놀이터를 두고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유아들에게는 옥외 놀이터도 있는데 실내놀이터가 왜 필요하냐, 청소년과 어른을 위해 탁구장으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고, ‘나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관리비로 운영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눈비 오는 날, 혹서ㆍ혹한기에 층간소음의 원흉으로 지목 받는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놀아야 하나. 엄마 아빠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우여곡절 끝에 실내놀이터가 열렸다. 이전까지 1,500세대 아파트에는 옥외 놀이터 하나뿐이었다. 한 달 이용료는 ‘하나면 3만원, 둘이면 5만원’이다. 키즈카페에 비하면 비싸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사용자부담원칙이라는 말은 정말로 야속하게 들린다. 반육아적인 사회에서 아이만 자꾸 낳으라 한다. 얼떨결에 파트너의 뱃속에 둘째가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