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 기자

등록 : 2018.04.26 04:40
수정 : 2018.04.26 09:53

“재난 피해 트라우마, 개인 넘어 사회가 치유해야”

등록 : 2018.04.26 04:40
수정 : 2018.04.26 09:53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 팀장

재난 일어나면 현장 전문가 파견

증상 따라 4~20회 치료 프로그램

“사회적 낙인 등에 2차 피해 발생

내 가족 일이라 여기고 응원해야”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집단 트라우마 피해자가 뒤늦게나마 치료를 받으면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심민영 팀장은 “트라우마 자체는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트라우마 후에도 긍정적인 삶이 있다’는 자기 서사를 만들면서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라면서 “10년, 20년 전 겪은 트라우마도 치료 단 10번 만에 드라마틱하게 호전된 사례가 있다. 치료 대상자 산정에 기간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재난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발생한 국내 대형 재난 사고는 66건, 자연 재난은 20건이었다. 이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자를 포함해 2,394명, 재산 피해는 15조 5,760여억 원에 달한다. 한국에서 평균 6개월마다 10명 이상이 재난 피해를 받았다는 얘기다. 세월호 침몰, 메르스, 포항 지진을 차례로 겪으며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게 간발의 차’라는 불안이 우리 국민의 무의식에 내재됐다.

대형 재난으로부터 오는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국가가 나섰다. 지난 5일 개소한 국가트라우마센터다.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내에 마련된 센터는 트라우마 전문가를 양성하고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을 구축해 피해자의 심리 회복을 돕는다. 18일 센터에서 만난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 설립추진 테스크포스 팀장은 “재난의 특성상 민간이 (심리 치료를) 조율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10여 년간 정신의학계가 요청한 국가 지원 체계가 이제야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평상시에도 전쟁, 재난에 대비하잖아요. 하지만 유독 재난 후 심리적 안정에 관한 지원 체계는 없었습니다. 재난 후유증은 ‘개인이 이겨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죠. 트라우마 초기에 전문가가 개입하면 후유증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생명, 신체적 안녕에 위협되는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말한다. 정신적 충격 한 달 이후에도 불안, 공포, 고통이 “몸이 체하면 토하면서 되새김질 하듯” 반복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ㆍ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분류되는데, 최대 수년 이후 발병하기도 한다. 심 팀장은 “수면 시간, 해리 증상 등 트라우마 경험 직후 검사를 통해 ‘나쁜 예후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교통사고, 가족의 죽음 등 개인적 트라우마와 재난 같은 집단 트라우마가 PTSD로 진행되는 양상, 치료법에 큰 차이는 없다”면서도 “대형사고 피해자의 경우 주변 시선 등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2차적 스트레스가 더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사건은 숨기고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데, 대형 참사는 그럴 수가 없죠.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자극하기도 하고요. 비슷한 참사가 새로 발생할 때마다 이전 재난 피해자 중 PTSD가 악화하는 분이 있습니다.”

심 팀장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국립서울병원이었던 2007년 정신건강과 전문의로 부임했다. 서울대병원 근무 시절 대구 지하철 참사 PTSD 환자를 연구하면서 “진료 외에 교육, 연구도 하고 싶어” 지원했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국내 재난 트라우마 연구가 시작됐지만 서울병원에 온 2007년만 해도 재난 트라우마 연구는 연구자 개인의 몫이었어요. 2013년 서울병원 공공사업단 내에 심리적외상관리팀이 꾸려졌고, 이듬해 2억원 예산이 생겨 심리지원단으로 개편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이후 국가적 재난, 사고 발생 시 국가가 심리 치료를 지원하는 트라우마센터 건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번번이 추진이 무산되다 문재인정부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되며 급물살을 탔다.

심민영 팀장이 1990년이후 국내 발생한 대형 재난과 트라우마 연구를 설명하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당시 "개인의 의지"로 후유증을 이겨내라는 일반의 인식은,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국가가 개입해 관리, 치유해야 한다는 단계로 발전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가재난트라우마센터는 국가트라우마센터로 바뀌었다. 달라진 명칭처럼 일본군위안부,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 폭력에 따른 후유증까지 치료 대상 범위가 넓혀지는 거냐는 질문에 “당분간은 재난 후유증 치료에 집중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살 유가족은 심리부검센터, 성폭력은 해바라기 센터, 5ㆍ18민주화운동은 광주트라우마센터 등 각 사건에 맞는 센터, 해당 법령이 있는데 저희가 개입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이들 센터는 특정 사건 피해자를 치료하는데 중점을 맞추는데, 저희는 재난에 대한 선제적인 트라우마 관리를 위주로 합니다. 다만 관련 기관과 치료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등 협업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올해 책정된 예산은 17억 원, 전문의 2명을 포함해 인력 17인 모두 정신보건 전문가로 구성됐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피해자 심리 치유를 위한 안산온마음센터 1년 예산 40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개소 전부터 ‘생색내기 행정’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심 팀장은 “예산, 인력 등을 따지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직제, 치료 프로그램, 치료 기간을 구축하는 단계예요.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 파견돼 피해자 심리 평가하고 우울, 불안, 불면 등 증상에 따라 4회, 10회, 20회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주 1회라면 5개월짜리 프로그램이 되겠죠. 나중에 PTSD가 발병하는 사례도 있어 1,3,6개월 마다 추적관찰도 필요합니다.”

재난 피해 당사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과 업무 종사자까지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국립정신병원(공주 나주 춘천 부곡)에 권역별 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심 팀장은 “의료 보험 체계가 아니라서 정신과 치료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변 반응에 따라 트라우마 경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최근 대형 재난의 특징은 누구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에요. 나의 일, 내 가족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 피해자가 있다면 따뜻하게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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