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여서 노동법 공부했다고 끌려가서 고문당하지는 않잖아요.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건 사회의 걸림돌로 취급 받던 노동자들이 피 흘려가며 이룩한 겁니다.”
25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만난 하종강(60)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그의 이 말은 최근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도 똑같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도와 노조를 조직하고 노동상담을 하는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이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는 장면에서다. 하 교수는 “지인이 이 대사를 보고 ‘하 선생님 말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 끼쳤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송곳’은 2008년 10월 최 작가와 하 교수가 만나면서 구상이 시작됐다. 극중 구고신 소장은 노조를 조직해 사측과 싸우는 주인공에게 노동계의 실상을 보여주고 투쟁 방향에 대해 조언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바로 하 교수다. 인하대 74학번인 그는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다녀온 후 노동 운동으로 전환해 30여년간 노동상담 및 교육을 해 왔다. 그럼에도 하 교수는 “작가와 자주 만나서 제 모습이나 말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구고신은 많은 노동 운동가들의 모습이 버무려진 것”이라고 쑥스러워했다.
노동 문제가 등한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송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에 대해 하 교수는 “일반 직장인과 전형적 육체노동자들이 뒤섞여 있는 마트를 배경으로 해 독자들이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공감하는 것 같다”며 “‘송곳’에 나오는 이야기는 특별한 일부가 아닌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그리고 내가 겪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노동 문제가 대중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지만 앞으로는 노동 운동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근무평가에 따라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는 일반해고제가 도입되면,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저평가자에 포함돼 노조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 조직율은 1989년 19.8%를 기록한 뒤 현재는 10% 내외로 하락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정규직마저 늘어나 노동 운동은 더욱 힘든 환경을 맞게 됐다고 하 교수는 설명한다. 그는 “우리나라 신규 취업자의 80%가 비정규직”이라며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하면 사측에서 계약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아 해고되는 것과 다름 없는데 누가 노조에 가입하겠냐”고 되물었다.
이처럼 어려워진 환경이지만 ‘송곳’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서 그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그는 “노예제도를 철폐하는데 200년 걸렸듯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웹툰 ‘송곳’이 작은 불씨가 돼서 노동 운동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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