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등 일련의 대형 악성 사건의 후속 조치로 병영문화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거 대형 사건ㆍ사고가 날 때마다 내놓았던 대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어서 병영 내 악습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군 수뇌부의 인식이 국민들이 갖는 우려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사실만 새삼 확인시켰다.
국방부가 발표한 병영문화 혁신안은 군인복무기본법 제정과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신고 포상제도 도입,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기준 강화, 현역복무 부적합자 조기 전역 등 19개 과제다. 이전에 발표된 조치와 비슷비슷한 대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다는 인상이 든다.
국방부가 장병 기본권 제고를 위해 제정하겠다고 밝힌 군인복무기본법에는 병사 상호간에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비롯한 사적 제재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그 동안 훈령 차원에서 이뤄지던 장병 인권보호를 법률로 만든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당시 이미 이 법안 제정을 공언한 바 있다. 2007년에는 구타와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군인복무기본법을 입법예고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제대로 실현할 의지와 노력도 보이지 않다가 대형 악재가 터지자 포장만 바꿔 내놓은 셈이다. 법안 내용도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국방부에 권고한 군 인권법 보다 미흡한 수준이다. 당시 인권위 안에는 병사 계급별로 구성된 병영생활협의체 구성 등의 획기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밖에 소원수리 및 고충처리 제도 개선과 장병 언어순화 운동, 초급장교ㆍ부사관 리더십 향상 등도 개선책이 나올 때마다 포함됐던 단골메뉴다.
무엇보다 이번 개선안에는 민간에서 제기된 혁신적인 방안들이 반영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군내 인권문제를 투명하게 다룰 수 있는 핵심 장치로 군사 옴부즈맨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회 산하인 군사 옴부즈맨은 권리를 침해 당한 군인이 진정한 사항에 대해 직권조사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돼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옴부즈맨 권한이 워낙 막강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병사들이 병영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군사보안 유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금의 병영은 오랫동안 누적된 악습으로 혁명적인 수준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기존의 대책을 재탕ㆍ삼탕하는 정도로는 중증을 앓고 있는 병영을 치유할 수 없다. 전문가 상당수가 도입을 요구하는 제도라면 군 당국은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방부에서 주재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군은 개방적 태도로 사회와 연계해 병영문화 혁신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포함해 국민의 여론을 폭 넓게 반영해 획기적인 대책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다. 박 대통령이 한 달도 안돼 다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한 것은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 수뇌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뿌리깊은 적폐를 청산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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