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리비아에서는 왜 납치가 빈발할까

알림

리비아에서는 왜 납치가 빈발할까

입력
2018.08.04 01:26
0 0

무장 민병대 난립으로 일상화… “납치 산업” 표현도

카다피 정권 붕괴 이래 중앙권력 무력

지난 1일 리비아 매체 218뉴스를 통해 한국인 1명(왼쪽 두번째)과 필리핀인 3명 등이 납치된 채 도움을 호소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지난 1일 리비아 매체 218뉴스를 통해 한국인 1명(왼쪽 두번째)과 필리핀인 3명 등이 납치된 채 도움을 호소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7월 6일 리비아 서부 자발하사우나 지역에서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무장단체가 인조 강물을 끌어들이려는 공사 현장에 침입해 한국인 1명과 필리핀인 3명을 납치했다. 이 사건은 리비아에서 7월에 있었던 유일한 납치 사건이 아니다. 앞선 3일에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일하다 이집트로 복귀하던 이집트인 6명이 납치됐다. 이튿날인 7일에는 남동부 끝 타제르보의 관개시설에 테러집단이 침입해 리비아인 엔지니어와 경호 병력 등 2명을 살해하고 2명을 납치했다. 7월 14일 남서부 엘샤라라 석유지대에 있는 국영 석유기업 유전을 급습해 루마니아인 1명과 리비아인 3명을 납치했다.

최근 리비아에서 잇따르는 납치 사건은 “납치 산업(아랍권 전문매체 알모니터)”이라 불릴 정도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납치 피해자의 통계는 단편적으로만 존재하며, 언론에 보도된 것 이외에도 수많은 납치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BBC방송에 따르면, 2015년 리비아 적신월사는 2014년 2월에서 2015년 4월까지 약 1년 2개월 사이에 600명 이상이 납치됐다고 발표했다. 리비아통합정부(GNA) 내무부는 트리폴리에서 2017년 3월 한 달간 189명, 4월 한 달 간은 68명이 납치됐다고 파악했다. 납치 피해자는 정치인에서 사회운동가,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엘샤라라 유전지대의 유전 시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엘샤라라 유전지대의 유전 시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장 흔한 경우는 몸값을 노린 납치다. 2015년 9월, 리비아 북서부 항구 도시 수르만에 거주하는 기업가 리아드 압둘하미드 알리 셰르사리의 맏딸 다합(11)과 두 아들 압드(8), 모하마드(6)는 차를 타고 학교로 가던 중 도심에서 무장단체의 급습을 당했다. 이들은 셰르사리 가 개인 운전수의 다리에 총을 다섯 발 쏘고 아이들을 데려갔다. 몸값을 노린 표적 납치였다.

이틀 뒤 납치범들은 2,000만리비아디나르(약 20억원)을 요구했으나, 가족은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게 행방을 놓친 채 2년 이상이 흐른 올해 3월, 납치범 5명 중 4명이 사살됐고 마지막으로 남은 1명이 아이들을 묻은 장소를 자백했다. 3년을 기다린 끝에 아이들은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리비아의 납치 문제를 연구한 휴먼라이츠워치의 수석연구자 하난 살라는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에서 납치가 거의 일상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를 들었다. “한 남자가 납치를 당했다. 이들이 남자를 납치한 이유는, 이 남자를 납치한 이들의 가족이 다른 납치범에게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납치범에게 몸값을 주기 위해 납치범이 된 것이다.

2018년 5월 14일 리비아 미스라타에서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에 살해된 이집트 콥트인들의 유해가 이집트로 이송되고 있다. 미스라타=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5월 14일 리비아 미스라타에서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에 살해된 이집트 콥트인들의 유해가 이집트로 이송되고 있다. 미스라타=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병대들이 범죄가 아닌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력 정치인을 납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집권을 노리는 대부분의 정치 세력이 수하에 민병대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트리폴리 임시정부의 총리 출신인 알리 자이단이 반군 무장단체에 납치된 것이다. 그는 현직 총리 때인 2013년에 한 번 납치됐다 풀려났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인 2017년 트리폴리를 방문했을 때 또 한 번 납치됐다 풀려났다.

최근에도 이런 납치는 계속되고 있다. 내전 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돼 온 리비아 제3도시 미스라타의 모하마드 에스테위 시장은 2017년 12월에 터키에서 귀국하던 길에 납치됐고 끝내 시신으로 발견됐다. 올해 3월에는 압델라우프 바이텔말 트리폴리 시장이 한밤중 들이닥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풀려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국은 바이텔말 시장의 부패 혐의 때문에 그를 일시 구금해 조사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트리폴리 시의회는 “사건의 진상을 숨기려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정치인보다 이름이 덜 알려진 수많은 시민 활동가들은 ‘강제 실종’을 당한다. 반(反)민병대 활동가 압델모에즈 바눈은 2014년 여름에 트리폴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리비아에서 성장한 수단인 활동가 자비르 자인은 지난해 9월 트리폴리의 한 카페에서 무장한 남성들에 의해 납치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경우 납치범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비르 자인의 경우, 당초 그를 납치한 주범으로 지목된 민병대가 납치 사실을 부인한 이후로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는 상태다.

2014년 리비아 퇴역 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이끄는 무장단체가 수도 트리폴리의 의사당 장악을 시도하는 사건을 계기로 내전이 촉발됐다. 이전부터 리비아 내부는 무장 정파의 난립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당시 트리폴리 합동보안군이 의사당으로 이동하는 모습. 트리폴리=AP 연합뉴스
2014년 리비아 퇴역 장성 칼리파 하프타르가 이끄는 무장단체가 수도 트리폴리의 의사당 장악을 시도하는 사건을 계기로 내전이 촉발됐다. 이전부터 리비아 내부는 무장 정파의 난립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당시 트리폴리 합동보안군이 의사당으로 이동하는 모습. 트리폴리=AP 연합뉴스

유엔과 국제사회로부터 공식 정부로 인정받고 있는 리비아통합정부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드리스 알파이시는 2012년 실종돼 납치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들 말리크를 찾고 있다. 그는 알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사라진 이후 누구도 내게 연락해 몸값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았다. 지난 6년간 정부에 아들에 관한 정보라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누구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16년 2월 체결된 리비아정치협약(LPA)의 26조는 통합정부가 납치 등으로 사라진 이들의 행방을 수색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최근에서야 정부의 명령을 받은 일부 민병대가 납치 피해자를 수색하는 작업에 돌입했지만, 파리8대학의 박사과정 연구원인 잘렐 하르차위는 “수색에 참여하는 민병대마저 뒤로는 납치를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리비아) 민병대에 납치는 과외활동 같은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붙잡아서 (정치적으로) 쓸모가 있으면 이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몸값을 요구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리비아통합정부에 실질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아랍의 봄’ 운동으로 촉발된 반군의 도전을 받고 무너졌지만, 힘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임시정부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파로 분열됐고 2014년 제2차 내전이 발발했다. 이를 틈타 이슬람국가(IS) 같은 외부 극단주의 무장단체마저 파고들면서 리비아는 완전한 혼란에 빠져 들었다.

리비아 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의 최대 거점인 시르테 해방 작전에 임한 리비아 병사들. 시르테=로이터 연합뉴스
리비아 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의 최대 거점인 시르테 해방 작전에 임한 리비아 병사들. 시르테=로이터 연합뉴스

2016년 리비아 정부군과 국제동맹이 IS의 핵심 거점 시르테를 제압했고, 트리폴리와 토브루크 둘로 나뉜 정부가 뭉치기로 합의하면서 상황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대선과 총선이 2018년 12월로 예정된 가운데 여전히 두 정부는 실질적으로 나뉘어 있다.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나머지 지역도 소규모 민병대와 무장조직이 점거하고 있고, 카다피 정권의 추종 세력도 여전히 존재한다. 시르테가 무너졌지만 옛 IS 집단도 계속 활동 중이다.

피랍된 한국인에 대해 앞서 한국 정부 관계자는 “리비아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협조하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납치 무장단체가 “정부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에 은신하고 있다”는 설명도 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아덴만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청해부대를 리비아 인근으로 급파했다. 3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한국인과 함께 납치된 상태인 필리핀인 3명을 구하기 위해 구축함을 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