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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아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해

입력
2017.02.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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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명절에 아이가 아파 병원 응급실로 갔다. 접수를 하고 담당 의사가 오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한테 의사가 언제 오는지 물어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환자들이 속속 몰려왔다. 젊은 주부는 가족 친지와의 갈등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자해의 위험성이 높아 보였다. 동생이 교통사고로 다친 것을 보고 실신해 들어온 어린 누나도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의사가 소녀에게 몇 마디 건네는 사이 옆 침대에는 119에 실려온 중년 남자가 뉘어졌다. 술을 많이 마시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그는 아마도 한동안 가족의 손길이 끊긴 사람 같아 보였다. 119 대원과 간호사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병원에서 경찰서로 옮기자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고, 그냥 두자니 보호자도 없어 곤란한 모양이었다.

그때 한 의사가 긴급상황을 외치고 많은 의료진이 한곳으로 몰려갔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아들인 듯 보이는 한 청년이 서있었다. 그는 손을 모아 흔들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를 포함한 주위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부디 기적을 주소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기계에서 일정하게 이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들은 그 소리가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압박을 가했다. 사람들의 기도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의 어머니는 세상과의 끈을 놓았다. 청년은 그 품에 엎드려 끝도 없이 울었다. 응급실 전체가 숙연해졌다.

우리 아이에게 담당 의사가 오고 수액 처치를 한 후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내 옆에서 중년 남자가 탄식을 하고 있었다. 수 년간 형편 닿는 데까지 치료를 해왔지만 그래도 태산 같은 후회는 남는다고 했다. 저 안에서 아직 울고 있는 청년의 아버지였다. 응급실에 왔을 때 이미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어머니는 지방에서 아들이 올 때까지 버텼다고 한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친척들이 그를 부축하며 함께 슬퍼해주고 있었다.

응급실은 운명과 싸우는 곳이다. 큰 것을 잃었을지라도 남은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 곳이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우리는 마음을 아픈 이에게 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에 뭔가를 잃은 사람들이 힘을 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안고 사는 네 자매가 등장한다. 원래 세 명의 자매가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간 곳에서 새 어머니의 막내 동생이 있음을 발견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여 네 자매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밤 네 자매는 2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마당의 매실 나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막내가 매실을 어서 먹어보고 싶다고 하니, 큰언니가 막내를 바라보며 말한다. “벌레 잡고 소독하고, 살아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해.” 세 자매가 살던 집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되는 막내를 사랑으로 잘 거두겠다는 자매들의 마음이 들어있는 말이다. 코끝이 찡해지는 장면이다. 살아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하다니. 그렇다. 우리가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군가의 손길이 항상 머물기 때문이다. 심지어 떠나간 어머니라 할지라도 그 손길은 이 세상에 남은 아들에게 머물 것이다. 죽음은 너무나도 가까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 연약한 가지를 접붙여서 푸른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섯 살 아이가 물었다. “아빠, 오늘 왜 자꾸 슬퍼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 그 가족의 슬픔에 내가 동참하는 이유를 아이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만 쓰다듬어주었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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