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등록 : 2017.11.14 18:00
수정 : 2017.11.14 19:50

6200그루 메타세쿼이아 숲 늦가을 정취에 물들다

국내 최초 민간휴양림에서 시민의 숲으로...대전 장태산휴양림과 뿌리공원

등록 : 2017.11.14 18:00
수정 : 2017.11.14 19:50

초록을 다하고 노랑에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장태산휴양림의 메타세쿼이아. 산림욕장에서 올려다 본 나무는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자라고 있다. 대전=최흥수기자

계절의 변화는 눈에 띄게 빨라서 매일매일의 풍경이 다르다. 한편으로 좁은 국토지만 이 시기만큼은 대한민국도 큰 나라다.

꽃 소식이 치오를 때와 반대로, 단풍과 낙엽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지역과 수종에 따라 차이가 크다. 늦가을 대전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났다. 낙엽활엽수보다 색의 변화가 느리고, 잎을 한번에 떨구지 않아 조금 더 오래 가을의 잔상을 간직한 붉은 숲이다.

발갛게 물들어가는 메타세쿼이아 숲, 장태산휴양림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 이름과 함께 영원히 성장할 숲을 남긴 사람이 있다. 대전 서구 장태산휴양림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휴양림이다. 건설업으로 돈을 번 독림가(篤林家) 임창봉(1922~2002)씨는 1972년 사재 200억원을 투자해 산을 사고 숲을 가꿔 1991년 민간으로는 처음으로 휴양림을 개장했다. ‘휴양’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일반적이지도 않았고, ‘산림휴양’이라는 개념은 더더욱 생소한 시기였다. 시대를 앞서간 사업은 시작부터 어려움에 봉착했고, 1990년대 말 IMF를 거치면서 결국 휴양림을 매각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민간사업자에게 넘어갈 처지에 놓인 휴양림의 가치를 알아 본 건 대전의 시민사회였다. 경매에 부친 휴양림을 우여곡절 끝에 대전시에서 2002년 인수해 새롭게 단장하고 2006년 재개장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나선형 통로로 27m를 오르는 구조의 스카이카워.

타워에서 내려다 본 숲은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장태산휴양림은 최초의 민간휴양림이라는 타이틀 보다 전국 유일의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더 유명하다. 전남 담양과 전북 진안 등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은 지역은 여러 곳이지만, 대규모로 산림을 이룬 곳은 장태산휴양림뿐이다. 늦가을 풍경이 곱게 내려앉은 장안저수지를 지나 휴양림 입구를 통과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도 하늘로 쭉쭉 뻗는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6,200여 그루가 형성한 메타세쿼이아 숲은 입구부터 시작해 산 중턱에 위치한 통나무 숙소인 ‘숲속의 집’까지 이어진다.

자그마한 분수에 가을햇살 반짝이는 생태연못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휴양림의 자랑 ‘숲 속 어드벤처’로 이어진다. 목재 데크 로드를 통과해 나선형으로 27m 높이의 스카이타워를 오르는 구조로 숲과 자연을 좀 더 가까이서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전망대 꼭대기에 서면 40년 넘게 자란 메타세쿼이아와 눈 높이가 엇비슷해진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다시 발갛게 물들어 가는 피침형 나뭇잎과 원뿔 모양 수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을 젖히고 올려다보기만 한 나무를 허리춤에서 잡아보고 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모습이 이채롭다.

무질서해 보이는 나뭇가지도 일정한 규칙을 띠고 자란다.

만추의 장태산휴양림에서 낙엽 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

생태연못 주변도 붉게 물들었다.

생태연못에서 이어진 작은 계곡은 메타세쿼이아 산림욕장이다. 울창한 나무 기둥 사이로 가을 햇살이 사선으로 비치고, 시선을 위로 돌리면 서로 엉키지 않고 나름의 영역을 지키며 자라는 나뭇가지 사이로 실개천처럼 하늘이 흐른다. 피톤치드를 운운하지 않아도 고공에서 쏟아지는 기분 좋은 내음이 온몸으로 스미는 듯하다. 산림욕장 언저리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진한 커피 향을 풍긴다. 곳곳에 놓아둔 벤치에 않으면 그대로 가을 서정이다. 생태연못에서 출발해 계곡을 순환하는 등산로(약 2.5km)를 한 바퀴 돌아도 좋고, 숲 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숲 속 수련장 등을 연결한 산책로를 걸어도 괜찮다. 이마저도 번거로우면 산림욕장에 자리 펴고 소풍을 즐겨도 그만이다.

승용차로 장태산휴양림에 가려면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서대전IC나 안영IC가 편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크게 번거롭지 않다. 대전역이나 서대전역에서 200번(30분 간격) 버스를 탄 후 흑석네거리정류장에서 22번(35분 간격) 버스로 갈아타면 휴양림 입구에 닿는다.

복고풍 뿌리공원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장태산휴양림에서 멀지 않은 대전 중구 침산동에는 이름도 생소한 ‘뿌리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여 경로효친 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레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세계 최초로 성씨(姓氏)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충효의 산 교육장이다.” 안내문에 적힌 뿌리공원 소개 글이다. 경로효친과 충효사상, 다 좋다. 반만년 역사를 지켜온 근간이었고 소중한 가치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문화가정이 넘쳐나는 글로벌시대에 이 무슨 과거지향형 관광지란 말인가. 그런데도 하루 2,000~3,000명은 기본으로 찾는다니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전 침산동의 뿌리공원 모습.

한국의 각 성씨를 철판에 새겼다.

각 문중에서 세운 성씨 조형물이 모여 조각공원을 이루었다.

뿌리공원은 한마디로 아이디어 상품으로 탄생했다. 철도교통 발달로 급성장한 대전은 전통과는 거리가 있다. 뿌리공원이 자리한 침산동도 성씨 혹은 본향과 아무 관련이 없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지역을 되살릴 방안을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가 뿌리공원이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인구 1,000명 이상인 성씨는 153성 858본관으로 파악됐다. 대전 중구청은 이점에 착안해 맑은 물이 흐르는 유등천에 작은 보를 만들어 수변 경관을 정비하고, 양지바른 언덕에 뿌리공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희망하는 문중에 3평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해 지금까지 244개 문중이 자신의 뿌리를 알리는 성씨 상징물을 세웠다. 석재나 동(銅)으로 만든 조형물은 각 문중의 예술가들이나 전문가들이 정성을 들였다. 외형도 본관(지역)의 특성을 나타낸 것에서부터 후손들의 번성을 기원하거나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모양 등으로 다양해, 뿌리공원 전체가 거대한 조각공원으로 변신했다.

상징조형물은 의도했든 아니든 가문의 위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은근히 자존심 경쟁도 부추긴다. 강요하지 않아도 품위와 예술성을 가미한 작품이 들어서는 이유다. 대부분 조형물은 성씨의 유래와 문중의 대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문중의 단체방문객이 공원을 많은 찾는 편이다. 최근에는 야관경관조명을 더하고 산림욕장과 자연관찰원을 연결하는 다양한 산책코스를 만들어 가족단위 여행객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본인의 성씨 외에 자연스럽게 어머니ㆍ할머니 성씨의 역사와 인물도 찾아보게 된다. 뿌리공원 입구에는 족보박물관도 만들어 족보의 구성 원리와 체계, 오래된 족보 등을 전시하고 있다.

어느 성씨에서 세운 조형물일까? 은근히 자존심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과 뿌리공원을 연결한 다리. 효를 강조한 공원 조성 취지에도 불구하고 ‘과거지향적’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대목은 뿌리공원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한국의 전통 성씨는 270개 안팎으로 보고 있는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외국에서 귀화해 생긴 성씨가 급격히 늘어나 총 5,582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징물을 세울 여력이 없는 소수 희귀 성씨에게도 기회를 준다면, 미래지향적 공원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유난히 ‘겨레’를 강조한 퇴행적 이미지가 못내 거슬리기에 드는 생각이다. 뿌리공원은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안영IC에서 1km 떨어져 있고, 대전역에서 313번(22분 간격) 버스를 타면 40분 정도 걸린다. 공원 입장료는 성인 2,000원.

대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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