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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역할과 기능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이유

입력
2017.07.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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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개혁과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간 묵혀두었던 이해 충돌과 갈등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조차 모호한 것들도 많다. 이러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본질적 역할을 더듬어 보는 일이다.

법과 규제는 한 사회의 기본 인프라이다. 법의 기능은 갈등의 해결을 통해 그 사회의 지속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규제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방지하거나 적절하게 분산함으로써 시장참가자들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한다. 따라서 법이 오히려 갈등을 야기하고, 규제가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는 경우라면 그 법과 규제는 개정ㆍ개선되어야 한다.

사회시스템은 크게 민간과 공공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민간의 역할은 시장에 의해 평가 받으며, 가격을 통해 보상받는다. 공공부문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공익보호라는 효과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효율과 효과가 반드시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 일에 효율적이더라도 효과가 없었다면 정부는 실패한 것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성과시스템은 효율중심적이다. 성과평가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지지 못한 기준은 정작 중요한 곳에서 효과를 놓칠 수 있다.

공적 기능이 수행되는 곳에는 재정이 쓰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경찰, 소방 그리고 필수적 복지분야를 예로 들 수 있다. 모호한 곳도 있다. 사법시험 존치론의 논거 중 하나는 개인의 낮은 비용부담이다. 그런데 사법연수생들에게 주어지는 급여와 교육비용은 모두 세금에서 나온다. 공무원으로서 법조인 교육이라면 당연한 것이나 자격증으로서 변호사 양성에 세금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반면, 중소기업 지원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큰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전체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산업 및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은 개인적이지만 그 사회적 기능도 중요하다. 근래 버스기사의 피로 누적으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공공운송수단으로서 버스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운전자가 운전이라는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휴식이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휴식보장이라는 안전판을 만들어 놓고도 근로기준법상 노사합의라는 회피로를 열어주는 우를 범하였다.

전 정부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감사원과 검찰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있다. 검찰은 정치와 조직중심적 사고로부터 독립하지 못해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감사원에 대해서는 4대강 등 정책감사와 관련하여, 감사의 시점상 차이라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이 일반국민의 눈높이에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사정기관이 법이 부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지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외압은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시로부터의 자유’를 기능적 독립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대 간 갈등의 문제도 역할의 변화에 원인이 있다. 농경사회로부터 지금까지는 경험에 기초한 지식이 발전을 이끌었다. 따라서 연륜이 있는 세대가 한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을 독점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창의가 중시되는 산업구조로 재편되고 있으며, 경험에 의존한 추격형 발전모델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커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욕구 또한 강해지고 있다. 기존 의사결정구조와 충돌은 필연적이다.

한 사회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들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를 중심으로 사회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일은 객관적 시각에서 방향성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한번쯤은 화려한 부수적 기능 말고 원래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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