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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0원 항공권으로 보라카이를 다녀왔다

입력
2017.05.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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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언급된 팬퍼시픽 항공은 국토교통부로부터 4월27일~5월15일까지 한시적으로 운항허가를 받았으며, 이후 국토부의 허가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현재 한국 운항이 중단된 상태임을 미리 밝힙니다.

지인으로부터 '플레이윙즈'란 앱을 소개받은 것이 발단이었다. 여러 항공사의 특가만 모아놓은 이 앱은 리스트를 확인을 하면 할수록 여행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듯했다. 보라카이 왕복 9만9,000원! 여러 이유로 필리핀을 방문했음에도, 보라카이는 이미 우리의 여행지로 정해진 것 같았다. 기다려라, 보라카이!

9만9,000원 항공권 사실일까?

‘플레이윙즈’ 앱의 메인 화면은 ‘특가정보’로 숨겨왔던 방랑벽을 부채질한다.
‘플레이윙즈’ 앱의 메인 화면은 ‘특가정보’로 숨겨왔던 방랑벽을 부채질한다.

‘99,000원’이란 믿기지 않는 숫자를 클릭, 연결된 팬퍼시픽항공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6일 체류 기간을 두고, 날짜 별로 ‘35,500원’이라 적힌 편도 버튼을 각각 눌렀다. 어라? 버튼을 누르면 누를수록 호떡 뒤집히듯 가격이 바뀌었다. 왕복 결제 총액이 1인당 대략 25만원 정도로 산출되면서, 인천행 편도 금액이 20만원에 가까운 숫자로 껑충 뛰어올랐다. 정녕 우리는 ‘신의 티켓’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단 말인가! 바로 ‘플레이윙즈’의 리뷰를 읽어보니, 역시나 요령이 있었다. 3박4일 혹은 3박5일 기간으로 항공권을 택해야 한다는 거다. 오호라, 된다! 세금과 수수료를 모두 포함해 9만9,000원이었다. 기내식도 준다. 무료 수화물 허용량도 20kg이다. 칼리보(보라카이)행은 5월8일 오전 7시, 인천행은 11일 오후 11시20분. 3박5일 여정을 잡았다. 미션을 수행한 그때, 마음속엔 이미 출렁이고 있는 열대의 해변이 그려졌다.

느림, 복장 터짐, 불안

자, 다음 단계. 9만9,000원이란 확정 금액을 확인하니, 좌석 배정 페이지가 떴다. ‘큭큭큭’ 만화 속 캐릭터 마냥 웃었다. 배정 가능한 좌석에 모두 달러 표시가 떠 있었다. 역시나 ‘다른 필수 옵션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구나’ 싶었다. 좌석 등급별로 1만1,600원, 1만2,500원, 3,400원. 당연히 마지막 3,400원을 택했다. 이후 ‘결제 화면으로 이동 중’이란 페이지가 떴다. 10분, 20분…. 화면 속 비행기가 결제 화면을 통과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누르지 말라는 ‘새로 고침’은 강한 유혹이었다.

가능 좌석에 모두 뜬 달러 표시. 항공권을 받은 후에야 이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것을 깨달았다.
가능 좌석에 모두 뜬 달러 표시. 항공권을 받은 후에야 이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의 결제 실패. 누르지 말라는 ‘새로 고침’을 한 뒤 결제는 신속히 이뤄졌다.
한 번의 결제 실패. 누르지 말라는 ‘새로 고침’을 한 뒤 결제는 신속히 이뤄졌다.

이왕 결제를 기다리는 김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팬퍼시픽항공에 대해 검색했다. '(팬퍼시픽이) 국토부 인허가를 받지 않고 항공권을 팔았다', '항공기 1대로만 운영된다' 등 신생 항공사치곤 혹평이 넘쳐났다. 만일 ‘결항할 위기에 놓이면 어떡하지?’란 불편한 예상과 함께 인내의 대기 시간이 30분을 초과했다. 결국 금기시하던 ‘새로 고침’을 눌렀다. 다시 정보를 반복해 입력하니, 신기하게도 바로 뜬 결제 완료. 신용카드의 결제 문자도 재깍 울렸다. 그런데 탑승권은 어디에? 로그아웃된 상태로, 로그인 버튼을 눌러도 통 먹히지 않았다. 메일에도 항공사 홈페이지 회원가입 환영 인사뿐 탑승권은 도착 전이다. 이거, 어째 시작부터 불안한데….

갈 수는 있을까? 쇼미더(Show me the)탑승권

다음날 바로 항공사에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을 거란 강한 의심과 반복되는 통화 연결음이 뒤섞인 상태에서. 받았다!

"저기 탑승권이 안 왔는데요."

"얼마 결제하셨죠? 아, 네. 지금 당장 보낼게요"

항공권 메일을 받은 후 얼굴에 빗금이 그어졌다. 허탈했다. 우리가 지불한 좌석당 3,400원, 그것이 사전좌석배정 ‘유료 서비스’였던 것이다. 다시 문의했다. 이걸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냐고, 취소할 수 있냐고. 직원의 답변은 선택하지 않아도 됐으며,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항공사의 사전좌석배정이 유료일 경우 선택 옵션임을 눈치채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교묘했다. 가능 좌석에 모두 달러 표시가 되어 있어 반드시 선택해야만 결제 단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항목 이름도 ‘좌석 등급’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선택사항이란 건 꿈에도 몰랐다. ATM기 수수료를 떼인 듯한 치사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9만9,000원. 승자의 도취감으로 그르친 결과인가.

야간 버스의 막차 vs 일반 버스의 첫차

12년 연속 1위인 공항의 품격은 인천공항 홈페이지 내 교통/주차 안내에도 녹아 있다.
12년 연속 1위인 공항의 품격은 인천공항 홈페이지 내 교통/주차 안내에도 녹아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다음 난제는 야밤에 인천공항까지 어떻게 가느냐였다. 보라카이 체류 시간을 늘리고자 선택한 오전 7시 출국이었다. 일단, 편도 항공권 금액을 호가하는 택시는 최후의 보루다. 오전 7시 출국이니, 오전 5시쯤 공항에 도착하는 게 정석. 내심 ‘오전 5시30분에 탑승 수속을 밟아도 돼’라며 서울역 기준으로 출발하는 교통편을 탐색했다. 일단 인천행 공항철도의 첫차는 5시30분. 이를 탈 경우 비행기 문이 닫혀 울고불고하는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공항버스로 눈을 돌렸다. 공항버스의 첫차는 오전 4시30분, 서울역을 관통하는 버스의 소요 시간이 대략 70~80분이었다. ‘새벽이면 한가하겠지’할 법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예상이 아닌가. 결국, 인천공항에 문의했다. 그들의 답변은 서울역 기준으로 공항버스의 첫차를 타면 대략 오전 6시 즈음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것. 결국 새벽 3시 20분경 서울역 정류장에 서 있어야만 했다. N6001 야간 버스의 막차가 이때 출발했다. 하하하…, 서울에서 중남미 오지 버스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승무원이 더 분주한 탑승 수속

텅텅 빈 야간 버스에서 여유롭게 잠을 청할 줄 알았건만, 거의 만원 상태였다. 서울역 정류장에 도착한 건 새벽 3시15분. 딱 3자리만 남은 상태였다. 고작 다섯 정류장만 서는 야밤의 N6001 버스는 마지막 정류장인 송정역에서 한 승무원을 태우지 못했다.

새벽녘 인천공항은 어두울 뿐 분주한 낮의 에너지가 생동했다.
새벽녘 인천공항은 어두울 뿐 분주한 낮의 에너지가 생동했다.

탑승 수속 창구는 M, 맨 끝이었다. 팬퍼시픽 항공사의 자체 창구가 없어 아시아나 항공사의 창구를 빌려 사용하는 듯했다. 대여섯 명의 승객이 탑승 수속을 밟고 있는데, 창구 풍경이 좀 요상했다. 승무원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탑승 수속 시스템이 불안정한 것이 그 요인. 발권되는 컴퓨터를 물색하고, 프린트되는 컴퓨터를 찾아 헤맸다. 멀뚱멀뚱 기다리는 우리에게 미안했는지, 승무원이 괜한 말을 했다.

"발권하는데 오래 걸리죠? 저희가 아직 일주일밖에 안 돼서요…"

팬퍼시픽 항공사는 5월1일 국토부 인허가를 받으면서 첫 비행을 시작했다. 4월27일 야심차게 보라카이 비행을 예고하며 예약까지 받았으나 낭패를 맛봤다. 온라인에서 ‘거짓말하는 항공사’란 낙인이 찍혀, 9만9,000원의 가격 파괴 이벤트에도 파리가 날리는 상황. 모든 정황을 모르던 우리만이 행운의 주인공으로 당첨된 듯 격하게 착각한 것이었다.

친히 간이 침대가 되어 버린 좌석들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연된 칼리보행 필리핀 항공. 우리의 8Y 701편은 30분만 지연되어 위로 받았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지연된 칼리보행 필리핀 항공. 우리의 8Y 701편은 30분만 지연되어 위로 받았다.
팬퍼시픽 항공기를 본 후에야 믿거나 말거나 보라카이행이 현실 같았다.
팬퍼시픽 항공기를 본 후에야 믿거나 말거나 보라카이행이 현실 같았다.
누군가의 침대가 되기를 기다리는 텅텅 빈 좌석.
누군가의 침대가 되기를 기다리는 텅텅 빈 좌석.

탑승 시각이 오전 7시에서 7시30분으로 변경됐다. 이럴 거면 첫차를 타도 되지 않았을까, 선잠의 대가를 불평으로 분출했다. 게을리 있다가 탑승구로 가니, 두 명의 조종사가 창문 앞 난간에 쭈그려 앉아 있다. 비행기가 뜰지 의심될 정도로 승객은 거의 없어 보였다. 착석했다. 1할의 희망이었던 USB 콘센트는 없다. 4시간 비행의 친구가 될 잡지도, 신문도, 내심 기대한 미니 스크린도 없다. 결정적으로 황당한 일도 있었다. 탕탕과 떨어져 각자 창가로 사전 배정했던 좌석이 정확히 날개 쪽이다.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사진 촬영을 막는 방해물이었다. 간단히 뒤로 옮겼다. 남는 게 좌석이었기 때문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세어 보아도 승객 수는 20여명. 총 174석에서 10% 남짓한 점유율이다. 아무 도움되지 않는 남의 걱정을 시작했다. 이 항공사는 올해 초 약 2개월간만 운항했던 씨에어 항공의 후예가 될 것인가? 오전 7시23분,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팔걸이를 올리고 누울 자세를 갖췄다.

* 2편 ‘보라카이에서 백팩커가 사는 법’으로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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