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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한 합리적 신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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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한 합리적 신뢰가 필요하다

입력
2018.07.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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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 기획] ‘한국인은 불안하다’

⑤이명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이사(연세라이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 감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불안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불안은 우리를 생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았던 인류조상은 멸망했으며 불안했던 조상의 후손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길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다면 식은 땀이 흐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호흡이 가빠지게 되는 신체적 현상, 즉 공포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머리에서는 ‘이제 죽은 목숨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게 된다. 호랑이를 만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공포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상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더라도 호랑이를 또 만나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것 역시 지극히 정상이다.

이 때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호랑이를 만나는 상황이다. 호랑이를 만나지 않을 것이 100% 확실하다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할 수 없으니 원시시대 우리 조상은 항상 호랑이를 조심하며 살았을 것이다.

위의 상황과 비교해 다른 것은 모두 동일한데 호랑이만 없는 것이 바로 공황발작이며 공황장애다. 숲 속의 신 ‘판(Pan)’이 숲 속에 숨어서 혼자 지나가는 여행자를 놀라게 만들어 불안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진 여행자가 호흡이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걸음을 재촉하여 숲 속을 빠져나가게 됐다는 것에서 공황(Panic)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호랑이가 없는데 갑자기 죽을 것만 같은 신체증상, 공포반응을 경험한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했는데 정상이라고 한다. 잘 이해는 안되지만 그러려니 했는데 다시 한번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응급실에 가서 별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두려워할 실체가 없으니 공황발작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신체의 미묘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소변을 본 뒤 느껴지는 몸 떨림 현상이 공황발작을 유발하는 느낌을 준다고 화장실도 잘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이 공포를 학습하고 조건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최근 급물살을 타긴 하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대북정세, 지진 등의 재난, 미세먼지, 사망원인 1위인 암 등 사회구성원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수많은 원초적 요인들이 존재한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 중 가장 기초적인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야 정상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랑, 존중, 자아실현 등 상위 욕구를 거론하기 이전에 생존과 관련한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거나 위협받는 상황이 생기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위험이 실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정부와 사회구성원들은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공황을 다시 경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는 위험성을 과장하거나 없는 위험성을 지어내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는 인간 고유의 본능을 교묘히 활용하는 공포마케팅 전략이 언제나 높은 성공확률을 가진다는 것이 또 다른 함정이다.

공황장애가 심해지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못할 정도로 개인 기능이 손상되듯이, 부당하게 야기되는 사회적 불안이 가중될수록 그 사회 기능은 마비돼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공황장애 개인을 치료할 때 신체적 반응에 대한 탈감작요법과 상황을 파국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적 오류 수정을 위해 인지행동치료를 하듯, 사회의 불합리한 공포반응에도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

공황발작이 심장마비로 인한 가슴통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주듯이 사회적 상황도 사실을 객관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사실 왜곡은 질환 회복을 더디게 한다.

자동반사적으로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공황장애 환자의 인지적 오류를 수정해 스스로에 대한 믿음체계를 굳건히 하듯이, 우리 사회에 대한 합리적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생각은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명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이사
이명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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