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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안타까운 카이스트의 이민설명회

입력
2018.02.18 14: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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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카이스트에서 색다른 설명회가 열렸다.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가 진행한 미국 이민법 설명회다. 이민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 법률회사에서 활동하는 현지 변호사가 참석해 카이스트의 석ㆍ박사 학위 취득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취업 비자 및 영주권을 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내용을 전해 듣고 당혹스러웠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고급 두뇌로 인정받는 카이스트 석ㆍ박사들의 해외 이민을 위한 설명회가 다른 곳도 아닌 카이스트에서 열렸다는 점이 걸렸고, 이들이 국내 취업 대신 해외 이민을 알아봐야 할 정도로 답답한 국내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카이스트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나랏돈을 들여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국가 교육기관이다. 학부를 나와 대학원에 진학해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이 기간을 병역 특례로 인정받아 군 복무까지 면제받는다. 정부에서 이런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고급 두뇌들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카이스트도 이를 잘 알기에 2016년 국방부에서 병역특례를 폐지하려고 했을 때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주장을 펼친 카이스트에서 이민 설명회가 열렸다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이민이나 해외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무시하고 국가 교육기관이 나서서 취업을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약 관계로 맺어지는 사기업이라면 박사 학위 취득을 지원하며 의무 근무 기간을 정하고 이 기간 내 퇴사시 교육비 반환 등을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

해외 취업을 막겠다고 무턱대고 정부에서 국책연구기관 등에 석ㆍ박사급 연구인력의 일자리를 늘리기도 힘들다. 말단 공무원 늘리는 것도 국가의 재정 부담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국책 연구기관에 박사급 일자리를 늘리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민간 영역뿐이다. 문제는 국내 기업 가운데 미국의 구글 애플 아마존과 견줄 만한 경쟁력을 갖춰서 박사급 인재들이 앞다퉈 들어가고 싶어할 만한 곳이 몇 군데나 있는가이다. 언뜻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마저도 채용을 많이 하지 않고 대우나 근무환경 또한 미국의 잘 나가는 정보기술(IT) 기업들과 차이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안타깝지만 박사급 인재들의 미국 이민을 막을 방법이 없다.

때맞춰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이공계 석ㆍ박사급 두뇌들의 미국 이민 절차를 예전보다 느슨하게 풀어놨다. 국익을 위한 면제조항(NIW, National Interest Waiver) 확대다. NIW는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라면 6~9개월 걸리는 까다로운 노동인증 과정을 면제해 이민을 쉽게 만들어주는 제도다. 미국 내 일자리 확대를 위해 블루컬러의 유입을 제한하면서도 도움이 될 만한 고급 두뇌들은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NIW 확대로 창업 성공 경험이 있는 기술력을 갖춘 사업가들의 미국 이민이 용이해졌다. 단,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될 만한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NIW 확대로 미국 내 창업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곧 우리 정부의 일자리 정책 또한 변화가 필요함을 일깨운다. 이제는 양적 확대 못지 않게 질적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박사급 인력들이 해외 이민보다 국내 기업들에 취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각종 규제로 IT기업과 스타트업을 옥죄기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볼 수 있게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사급 인력들이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합류할 경우 기업과 해당 인력을 지원해 주는 제도 등도 검토해 볼 만하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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