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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잡스를 대신할 수 없다, 난 내 일을 할 뿐” 팀 쿡 애플 CEO

입력
2017.07.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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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스와의 5분 대화 이후

주위 만류에도 애플에 합류

#2 잡스 못지 않은 일벌레

유통ㆍ관리 형편 없던 애플을

‘관리 혁신’으로 돈방석에

#3 “10주년 기념 아이폰8는

늘 그랬듯이 상상 초월할 것”

1998년 컴팩 부사장이었던 팀 쿡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애플로의 이직이었다. 그때만 해도 컴팩은 IBM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최대 개인용컴퓨터(PC) 제조사였고, 애플은 시장 점유율이 5%도 채 되지 않았다. 매각설도 수차례 흘러나왔다. 주변에서 극구 만류한 건 당연했다. 그 자신도 “신중함과 이성은 바람에 던져버렸다”고 회상할 정도다.

그럼에도 쿡이 애플행을 결심한 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5분도 채 되지 않는’ 인터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잡스는 탁월한 입담으로 컴퓨터가 바꿔 갈 미래 모습에 대해 들려준 것으로 전해진다. 쿡은 “이성적으로 볼 때 비용 대비 효과는 컴팩이 애플을 앞섰지만, 나는 내 직관에 귀 기울였다”며 “이미 직관은 애플 합류가 창의적인 천재들과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평범한 기업의 임원쯤으로 끝날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은 비정상적으로만 보였던 한 번의 판단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애플에서 일하는 건 내가 그린 인생 계획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던 쿡이지만, 잡스에 이어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뒤 임직원에게 처음 보낸 이메일에서 그는 “애플에 합류하기로 한 건 내 생애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7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애플 제공
지난해 9월 7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애플 제공

‘시가총액 세계 최대 기업의 일인자.’ 지금의 팀 쿡을 수식하는 말이다. 화려한 왕관을 썼지만 어쩌면 그는 가장 불운한 CEO다. 취임 후 끊임없이 전임과의 비교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비교 상대가 심지어 망자(亡者)라니 억울할 법하지만, 취임 5년을 맞아 지난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잡스를 대신할 수 없다. 나도 처음부터 그의 대역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여전히 ‘잡스의 애플’을 그리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그의 고백처럼 쿡은 나름의 방식으로 애플을 일궜다. 그의 취임 이후 5년 만에 애플의 연 매출은 2배(2011년 1,082억달러→2016년 2,157억달러)로 뛰었고, 지난 5월에는 전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8,000억달러(약 890조5,600억원)를 돌파했다.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시가총액 1조달러 고지 정복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가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 가능해야 한다”던 잡스의 고집을 버리고 크기를 키워 내놓은 아이폰6ㆍ아이폰6플러스(2014년)가 지난 10년간 나온 아이폰 중 최고의 히트작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애플은 아이폰6 시리즈의 역대 최고급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7월 아이폰 누적 판매 10억대 돌파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쿡은 이달 24일로 취임 6년을 맞는다. 애플에 역사적인 제품이 될 아이폰 10주년 기념 신제품 공개도 앞두고 있다. 그가 선보일 새 혁신과 애플의 미래에 다시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7월 27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미국 쿠퍼티노 애플 본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이폰 누적 판매 10억대 돌파를 발표하며 아이폰6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쿡 CEO는 "우리는 항상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보다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애플 제공
지난해 7월 27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미국 쿠퍼티노 애플 본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이폰 누적 판매 10억대 돌파를 발표하며 아이폰6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쿡 CEO는 "우리는 항상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보다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애플 제공

애플 곳간을 채운 준비된 CEO

팀 쿡(정확한 이름은 티머시 쿡)은 196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로버츠데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소에 다녔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자기 고향을 “바닷가로 가는 작은 마을”이라고 소개하는 쿡은 유년 시절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을 만큼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할머니는 “어릴적 쿡은 무슨 일을 시작하든 마무리를 지었다”고 소개한다. 끈기가 강했던 쿡은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1982년 오번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쿡의 첫 번째 직장은 IBM이었다. 1994년까지 12년 동안 IBM PC 사업부에서 근무하며 도중에 듀크대 경영학 석사 학위(1988년)를 받았다. 1994년에는 PC 판매업체 인텔리전트 일렉트로닉스로 옮겨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고, 1997년 컴팩으로 이직해 6개월 간 부사장을 역임했다.

잡스의 권유로 1998년 애플에 둥지를 튼 뒤 그가 맡은 일은 공급 관리였다. 수요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해 회사가 입을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역할이다. 쿡이 합류하기 전 애플은 제조, 공급, 유통 모두 형편없는 회사라는 평을 들었다. 수요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창고엔 재고가 넘쳐났다.

쿡은 2년 만에 이런 고민을 해결했다. 70일 치 넘게 쌓여있던 재고는 10일 치 이하로 대폭 줄었다. 그의 완벽한 공급 관리가 빛을 발했던 대표적 사례로 2005년 MP3 재생기 ‘아이팟나노’ 출시 때가 꼽힌다. 하드디스크 저장장치를 썼던 기존 MP3기기와 달리 아이팟나노는 플래시메모리(전원이 끊겨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장치)를 써서 훨씬 얇고 가벼웠다. 쿡은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분명 열광할 것이라 보고, 12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대량의 메모리를 선구매했다. 엄청난 양을 한꺼번에 사들이며 단가를 낮췄고, 이는 높은 이윤을 내는 토대가 됐다. 이런 방식은 지금도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떤 회사보다도 많은 이익을 남기는 비결이다.

2007년 쿡은 애플 COO로 승진했다. 애플의 한 전직 임원은 2009년 미국 주간 타임 인터뷰에서 “잡스가 제품 개발을 이끌었다면, 쿡은 회사를 현금 더미로 만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잡스가 생전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데는 쿡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쿡은 준비된 CEO였다. 2004년 잡스가 췌장암 수술을 위해 두 달간 병가를 냈을 때를 시작으로 그는 총 세 번의 잡스 부재 기간에 CEO직을 대신 수행했다. 잡스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자 애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 쿡이라는 데 안팎의 이견이 없었다. 2011년 8월 잡스가 건강상 이유로 물러난 뒤 쿡은 자연스럽게 차기 CEO에 올랐다.

2011년 10월 19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미국 쿠퍼티노 본사 직원들 앞에서 고인이 된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기리며 그의 일대기를 낭독하고 있다. 애플 제공
2011년 10월 19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CEO가 미국 쿠퍼티노 본사 직원들 앞에서 고인이 된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기리며 그의 일대기를 낭독하고 있다. 애플 제공

관련기사 ☞ 그래도 애플이다

‘일벌레’ 쿡이 보여줄 관리의 혁신

쿡이 애플의 새 CEO로 선임된 다음 날인 2011년 8월 25일, 그가 받은 스톡옵션이 화제가 됐다. 보통주 100만주, 당시 환율을 기준으로 총 4,070억원 규모였다. 2021년 8월 21일까지 차례로 지급된다는 단서가 달렸다. 애플 이사회가 쿡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 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쿡은 잡스 못지않은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한 시간 동안 체육관에서 운동한 뒤 6시가 조금 지나 출근하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해 제일 늦게 퇴근하며, 일요일 저녁에도 회의를 열곤 한다.

추진력도 강하다. 쿡이 애플에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화다. 직원들과 회의를 하던 그는 “중국 상황이 좋지 않으니 누군가 가줘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30분이 지났을 때 자신의 수석 비서관이었던 사빈 칸을 보며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왜 아직도 여기 있느냐”는 거였다. 칸은 바로 일어나 공항에서 편도 항공권만 끊고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2014년 그 자신이 공개적으로 밝혔다시피 쿡은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는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신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로 산다는 건 때로 힘들었지만, 이를 통해 소수자를 깊이 이해하는 한편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역경과 편견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그는 고백한다. 쿡은 자신의 정체성이 “코뿔소 가죽처럼 강한 마음을 가지게 해 애플의 CEO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도 말했다.

잡스가 떠난 이후 애플은 “혁신이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기기의 혁신’이 아닌 ‘관리의 혁신’으로 방향이 바뀐 것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관리의 혁신에 중심에는 쿡이 있다. 그는 공공연히 “나는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제품을 만드는, 최고의 아이디어와 역량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쿡은 이들을 밀어붙여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데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폰8 추정 이미지. 아이드롭 뉴스
아이폰8 추정 이미지. 아이드롭 뉴스

애플은 9월 초 신제품 아이폰8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쿡은 지난해 “애플의 혁신이 끝났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애플은 인공지능(AI) 등 여러 신기술분야에서 놀라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는 “증강현실(AR)은 스마트폰만큼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며 “이제 사람들은 매일 밥 먹듯 AR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아이폰8는 그가 밝힌 구상을 아우르는 제품이 될 것이란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최근 쿡은 신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이렇게 요약했다.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제품이 될 것이다. 우리가 늘 그래왔듯이.”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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