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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검사외전'과 스크린 독과점

입력
2016.02.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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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외전'. 쇼박스 제공
영화 '검사외전'. 쇼박스 제공

영화 ‘검사외전’의 흥행몰이가 놀랍습니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설 연휴 극장가에서 600만 넘는 관객을 모으더니 주말이면 800만 관객 고지 점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검사외전’밖에 상영하지 않는데 당연한 결과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흘러나옵니다. 연휴 동안 전국 스크린의 80% 가까이가 ‘검사외전’을 내걸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너무나 오래된 논란이라 이제 입에 올리기조차 지겨운 스크린 독과점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11일 ‘검사외전’을 상영한 전국의 스크린수는 1,586개로 최대치를 기록했던 9일(1,806개)보다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수치입니다. 전체 스크린수가 2,424개이니 전국 스크린의 65.4%가 11일 ‘검사외전’을 상영한 겁니다.

극장 없는 쇼박스의 스크린 독과점

많이 거론되긴 했으나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제대로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기업 계열의 투자배급사가 자매사인 대형 멀티플렉스체인의 도움을 받아 스크린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실 것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멀티플렉스체인과 무관한 투자배급사의 영화가 전국 스크린을 점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쇼박스가 투자배급한 ‘검사외전’이 이에 해당합니다.

멀티플렉스의 계열사 영화 밀어주기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CGV가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 호의를 베풀고, 롯데시네마는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영화를 돕는다는 것이지요. 오리온그룹이 2007년 메가박스를 매각하기 전까지 쇼박스와 메가박스의 관계가 비슷한 시각에서 의심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CGV가 보유한 스크린 수는 975개, 롯데시네마는 753개입니다. 전체 스크린 중 점유율은 CGV가 40.2%, 롯데시네마가 31%입니다. CGV가 CJ엔터테인먼트 영화만 상영하기로 작정한다면 CJ엔터테인먼트는 전국 극장의 반 가까이를 확보하게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CGV와 CJ엔터테인먼트는 한 회사였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 안에 CGV와 방송사업을 담당하는 CJ미디어가 들어있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와 왼쪽 주머니 관계처럼 밀접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CJ그룹 안의 별도 상장회사입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지주회사 CJ E&M 안에서 영화사업만을 담당하는 회사이고, CGV는 극장업에 전념하는 또 다른 회사입니다. CJ그룹이라는 큰 우산 아래 놓여있지만 각자 실적을 쌓기 위해 따로 노력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CGV가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일방적으로 지원해주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롯데엔터테인먼트와 롯데시네마는 아직 하나의 회사라서 ‘담합’ 의혹을 곧잘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영화 관계자들에 따르면 계열사 사이의 담합에 대해 심증이 가는 일이 여럿 있습니다. 계열사 영화들의 경우 예매시기를 상대적으로 앞당겨 준다거나, 극장 내 광고물 부착 때 우선권을 주는 식으로 밀어준다는 소문이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습니다. 특히 예매시기 앞당겨주기는 무시 못할 혜택입니다.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보다 예매 시작이 1주일 정도만 빨라도 흥행고지 선점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계열사에 대한 전면 지원까지는 아니어도 측면 지원은 가능한 모양새입니다.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에 따른 실질적인 부작용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극장이 길게 내다봐야 할 때

각자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계열사끼리 노골적으로 담합하기 어렵다는 말은 ‘검사외전’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10일 일부 CGV점이 아이맥스관의 ‘쿵푸팬더3’ 상영을 갑작스레 취소하고 ‘검사외전’을 대신 상영해 빈축을 샀습니다. ‘쿵푸팬더3’를 예매한 관객들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예매를 취소토록 했다고 합니다. ‘쿵푸팬더3’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제작사는 미국 드림웍스애니메이션으로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제프리 캐천버그는 CJ그룹과 ‘특수관계’입니다. 1995년 당시 CJ그룹의 전신인 제일제당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캐천버그가 공동 설립한 SKG와 손을 잡으며 영상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SKG와의 협업에 큰 공을 세운 이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입니다. SKG로 인연을 맺은 캐천버그와 이 부회장은 20년 넘게 사업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CJ 콘텐츠 사업을 있게 하는데 적지 않게 도움을 준 인물이 캐천버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캐천버그가 제작한 영화가 일부 CGV점에서 ‘방’을 빼야 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지요.

CGV가 ‘쿵푸팬더3’ 대신 ‘검사외전’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검사외전’이 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극장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수직 감소하면서 극장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다른 점들과 실적 경쟁을 벌여야 하는 CGV점장들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습니다. ‘쿵푸팬더3’ 예매 취소와 ‘검사외전’ 대체 상영은 이런 상황이 빚은 웃지 못할 코미디입니다.

흥미롭게도 ‘검사외전’이 CJ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더 심하게 벌어졌다는 말도 나옵니다. 최대 멀티플렉스체인인 CGV의 경우 수직계열화에 따른 담합이라는 날 선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무리해서 상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롯데시네마에도 비슷한 논리가 성립합니다.

극장은 돈 될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도 원하는 시간대에 흥행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는데 스크린 독과점이 무슨 문제냐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은 극장가, 나아가 전체 영화산업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극장 상영작들의 다양성이 떨어지면 결국 관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장가에서는 벌써 3,4월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검사외전’의 흥행 열기도 식으면 또 어떤 영화로 먹고 사냐는 것이지요. 영화 관람도 음식 섭취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지면 여러 가지 맛을 내는 소박한, 그러나 몸에 좋은 음식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영화산업도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정부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여러 정책을 펴는 이유와 비슷한 논리가 영화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극장들이 당장 눈앞의 수익에 급급해 돈벌이 될 만한 영화에 ‘올인’하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들에게도 큰 피해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300만~500만 관객이 드는 이른바 ‘중박’ 영화는 갈수록 줄고, ‘대박’ 아니면 ‘쪽박’ 영화만 늘고 있습니다. 극장들이 특정 소수 영화에 목 매는 상황도 더 심해지고 있죠. 될 영화 밀어주기가 만든 부작용이 결국 자신들의 목을 죄고 있는 형국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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