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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종이신문이 사라진다면

입력
2016.03.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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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사회부장 hee@hankookilbo.com

3월 26일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마지막 종이신문 1면. EPA 연합뉴스
3월 26일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마지막 종이신문 1면. EPA 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전에 진출한 직후 “진정한 리더, 성숙하고 강인한 주장이며 지난 주말 스페인을 물리치는 마지막 페널티 킥을 차 넣을 때 그토록 당당했던 한국의 홍명보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바란다”고 쓴 것은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였다. 제임스 로턴의 이 칼럼은 주최국에 대한 예우는 아니었다. 그는 한국 축구팀이 “리드를 지킬 동안만 뛰는 척하지 않고 전 경기를 뛸 모험심과 용기와 의지가 있는 축구”를 보여주어 “지치고 돈독 오른 낡은 축구의 잔꾀를 때려 부수고 축구에 새 생명, 새 영혼을 불어넣었다”고 상찬하며 축구의 가치 그 뿌리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한국인이었기에 주목했겠지만 인디펜던트의 축구 칼럼은 축구 팬들에겐 정평이 나 있다.

2011년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인디펜던트는 어마어마한 재난의 참상에 대한 묘사를 잠시 뒤로 미루고 1면에 붉은 일장기와 “힘내라 일본!”이라는 제목만을 담았다. 사실 전달이 언론의 기능이지만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비극 앞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1면은 없었다. 몇 글자 제목과 편집, 그 획기적 발상으로 전세계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일본 대지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신문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하게 정론을 전달해 온 인디펜던트는 26일자를 끝으로 종이신문을 접었다. 1986년 ‘소유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립언론’을 표방하며 기자 3명이 중심이 돼 창간해 3년 만에 발행부수 40만부를 넘었던, 입지전적인 신문은 이렇게 한 시대를 마감했다. 마지막 종이신문 사설에서 인디펜던트는 “윤전기는 멈췄다. 그러나 인디펜던트의 정신은 언제나 살아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문사가 아예 문을 닫은 것도 아니고 온라인 매체로 전환한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보냐고, 기자들이나 연연해 하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인디펜던트의 온라인 전환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상징한다. 기자들이 정보를 확인해 기사를 쓰고, 윤전기로 인쇄해 독자에 전달하는 신문산업은 사실 막대한 초기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지금의 인터넷 시장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뉴스)이 제 값에 팔리지 못하고 있다. 포털업체가 일부 지불하지만 독자들은 공짜로 뉴스를 본다. 타 언론사의 상품을(특히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여된 특종 기사일수록) 비용 투자 없이 베껴 팔아먹는 매체들을 막을 길도 없다. 전세계 언론이 처한 이런 상황에서 인디펜던트는 적자가 쌓였고, 발행부수가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인 4만부까지 떨어졌다. 경영논리로 보면 윤전기와 종이, 잉크 값 등으로 한해 400억원의 적자를 이제 그만 절감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나라의 신문들 상당수가 조만간 인디펜던트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내심 전망한다. 그래서 아쉽다. 인디펜던트의 정신은 살아남더라도 신문 1면을 가득 채운 몇 마디 언명으로 독자를 울리는 일은 종이신문의 육체가 없다면 어렵다. 신문 1면에서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는 아젠다 설정도 온라인에선 어렵다. 포털에서만 뉴스를 접하는 독자는 해당 기사가 어떤 매체의 것인지조차 잘 구분하지 않는다. 시장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진작에 종이신문은 명맥을 감춰야 했다.

어쩌면 시장논리로 가장 설명이 안 되는 것은, 여전히 팩트를 확인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벼리는 기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당사자의 한마디 육성을 듣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고, 일방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말을 전한 사람, 들은 사람을 모두 교차 확인하고, 전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대한 표들을 일일이 취합하는, 그런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기자들이 있다. 팩트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그런 고지식한 기자들이 있다. 그렇게 해서 간혹 전모가 드러나고 불의가 바로잡힌다. 뉴 미디어 시대에 언론의 생존이 다만 언론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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