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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 궁금해?] ‘동등한 지도자’ 강조한 듯… 트럼프의 등 두드린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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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 궁금해?] ‘동등한 지도자’ 강조한 듯… 트럼프의 등 두드린 김정은

입력
2018.06.16 10: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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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노출 잦은 트럼프보다 김정은이 취재진 사이서 인기 갑자기 심야관광 나갈 땐 당황 # 합의문엔 ‘CVID’가 빠졌지만 ‘한미훈련 중단-비핵화 조치’ 다음 스텝 제시해 이제 시작 # 트럼프, 세상의 모든 합의문 휴지조각으로 보는 사람 맘에 안 들면 뒤집을 가능성도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과거 상상의 영역에서나 가능했던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만나 담판을 벌이는 초유의 상황을 전세계가 지켜봤다. 싱가포르 현지엔 각국 정보기관이 총 집결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놓은 공동성명 합의문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 ▦북한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 ▦미군 전쟁포로, 실종 군인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항이다. 자신만만했던 트럼프의 당초 기세와 달리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담기지 않아 김정은 쪽의 승리가 아니냐는 반응이 당장 쏟아졌다. 물론 두 지도자의 만남 자체가 한반도 전쟁위기를 일단 잠재웠다는 점에서 총론적으로는 긍정적 평가가 더 많은 편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이를 취재한 본보 특별취재팀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싱가포르 현지 취재환경은 어땠나요.

호찌민 쌀국수(쌀국수)=취재진 사이엔 김정은 위원장이 더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싱가포르에 도착한 10일 오후부터 12일 밤 늦게까지 약 50시간 동안 더 많은 기자들이 김 위원장 숙소,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서 ‘뻗치기’(기자들이 취재원이 나타날 현장에서 무작정 대기하는 것)를 했어요. 12일 밤, 회담을 마친 김 위원장이 출국을 위해 호텔을 뜨자 쓰러져 구급차로 후송되는 카메라기자도 있었죠.

손바닥 위 파랑새(파랑새)=김정은 위원장이 묵은 세인트 리지스 호텔 앞 탕린 광장은 각국 기자들의 광장이었죠. 사실 국제미디어센터(IMC)나 한국미디어센터는 편의상 등록은 해놓고 오지는 않는 경우가 많은 반면, 김 위원장 숙소는 그래도 최소 한 두 번은 눈도장 찍어야 하니까요. 싱가포르와 영국, 중국, 일본은 기본이고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카메라 기자도 있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묵었던 샹그릴라 호텔은 오히려 관심이 덜했던 것 같아요. 세계 언론은 아무래도 눈에 자주 띄는 트럼프보다는 자주 보기 힘든 김정은이 더 신기했겠죠.

불나방=회담 전날 밤 싱가포르 주변 관광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만 봐도 북측이 선방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는데. 갑자기 김 위원장이 관광을 나가 취재진도 당황했을 텐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시내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시내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판문점 메아리(메아리)=해 떠있을 동안은 두문불출했습니다. 그러더니 밤 9시쯤 숙소 앞 도로가 통제되기 시작했어요. 대략적인 동선 정보가 퍼졌습니다. 싱가포르 명소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쪽으로 간다더라고요. 전망 좋은 옥상에 올라간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밤에도 찌는 날씨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 취재진이 김 위원장을 치열하게 뒤쫓았죠. 생각해보면 싱가포르는 북한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한국의 두 배쯤 되지만 독재권력의 세습이 이뤄졌고 태형이 남아 있을 정도로 전근대적이죠. ‘잘사는 북한’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서방으로 분류되죠. 중국도 싱가포르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었다고 합니다.

쌀국수=북한이 앞으로 정말 변한다면, 그날 ‘관광’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놀란 일들이야 많지만 그날은 단연 압권. 대부분 늦은 저녁을 먹다 1보를 접했는데 안 체한 게 다행이죠. 하루 종일 예의주시 했으나 캄캄한 밤에 많은 기자들이 당했어요. 덜 덥고, 더 아름답고, 저격 가능성이 낮은 시간을 택한 것이죠.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용차량인 '비스트'를 보여주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용차량인 '비스트'를 보여주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 연합뉴스

불나방=북미 정상회담 진행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뭐가 떠오르나요.

삼각지 미식가(미식가)=합의문 서명 뒤 퇴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등을 툭툭 다독이더군요. 그러자 김 위원장도 트럼프 팔을 두드렸습니다. 친근감을 표현하는 매우 서구적 제스처인데, 미중 정상회담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이번 회담이 당장의 비핵화보다 ‘쇼잉 오프’(의도적으로 자신을 드러냄)에 쏠려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었죠.

마음은 콩밭에=트럼프 대통령이 ‘1급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전용 차량을 김 위원장에게 구경시켜준 게 인상적이었어요. 두 정상의 비전형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설마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건가?’ 싶어 당황도 했고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퇴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퇴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 연합뉴스

파랑새=저는 김정은을 향한 트럼프의 선제 ‘따봉’. 그걸 보자마자 이 양반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하진 않겠구나 싶었고 맘이 놓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처음엔 좀 어색하긴 했지만 점점 좋아졌어요. 서명식을 마치고 돌아서는 장면에서 트럼프 등 두드리는 장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과 동등한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혹은 트럼프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따라해 보는 느낌이었어요.

불나방=합의문에 상세한 비핵화 과정을 명시해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게 국제관계의 흔한 현상인데 그마저도 안 보여요. 트럼프 측의 굴욕적 강요를 김 위원장이 물리친 건가요. 공동성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데.

메아리=지나치게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북미 간 적대의 역사는 70년이에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정상은 험악한 말 폭탄을 주고 받았죠. 미국으로 핵 미사일을 날려 보내겠다며 사거리를 쭉쭉 뽑아낼 때만 해도 화난 트럼프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해빙이 느닷없이 찾아왔죠. 두 정상이 이렇게 빨리 만날 줄 누가 짐작했습니까. 그래서 착시가 온 것 같아요. 시선이 벌써 저 앞에 가 있었던 거죠. 이제 시작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죠. 2002년 깨진 제네바 합의가 16년 만에 복원된 거예요.

미식가=CVID는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고, 미국은 CVID도 없는 합의문에 종전선언을 넣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북미 모두 회담 뒤 거의 동시에 ‘한미연합훈련 중단-비핵화 조치’라는 ‘다음 스텝’을 제시했습니다. 합의문에는 없지만 두 지도자 간 공감대를 형성한 비핵화 시간표는 있다는 뜻이죠.

파랑새=애초에 트럼프는 세상의 모든 합의문을 휴지조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외교 전문가들은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트럼프가 말아먹은 굵직한 협약만 봐도 이란 협상, NAFTA, TPP, 파리 기후협약에 유네스코도 탈퇴했고 유엔, 나토도 흔들었죠. 저런 복잡한 국제기구나 다자협상도 비틀어버리는데 관계 정상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훈련 중단한다, 했다가 맘에 안 들면 다시 뒤집는 건 극히 손쉬운 일일 겁니다.

불나방=싱가포르에서 만난 해외언론과 친구가 될 기회는 없었나요.

파랑새=9일부터 싱가포르에서 메뚜기처럼 돌아다녔는데 동고동락한 내외신 기자들에게 경의와 공감을 표합니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더 친해지지 못해 아쉬웠어요. 리지스 호텔 앞마당에서 네덜란드 기자랑 친해졌는데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더군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한국말을 가르쳐 줬어요. 과연 어느 맥락에 인용했을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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