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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ㆍ폭력 줄이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싸우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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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ㆍ폭력 줄이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싸우는 유럽

입력
2016.07.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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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미국 뉴욕 시민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을 이어가며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9일 미국 뉴욕 시민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을 이어가며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흑인의 생명이 소중해질 때까지는 누구의 목숨도 소중하지 않다. 모든 백인 경찰을 죽여라.”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경찰관 5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나흘 후 페이스북에 등장한 ‘경찰 혐오’ 글이다. 미국 경찰의 잇따른 흑인 용의자 사살에 대한 흑인의 분노를 담은 극단적인 혐오 표현이었다.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었지만 미국 디트로이트 경찰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위협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작성자 4명을 즉각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초 흑백갈등을 야기한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전달된 과정을 둘러싸고도 표현의 자유 논란이 적지 않다. 폭력적이고 선동적인 장면을 무제한 유통시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조치가 과연 정당한지, 폭력 방지 효과는 있는지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세계 각국은 자유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獨ㆍ佛, 혐오 발언 제한의 ‘선두주자’

포린폴리시는 7일 ‘유럽 표현의 자유는 실패했다’는 기사를 통해 혐오 표현에 대한 보호 장벽을 일제히 무너뜨리고 있는 유럽 내 추세를 소개했다. 글을 쓴 덴마크 인권 전문 싱크탱크 유스티티아의 야콥 맥핸가마 소장은 “최근 10년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세계적인 흐름이 목격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 보호를 명예롭게 생각하던 유럽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나치정권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본보기 삼아 혐오 표현을 다방면으로 제한하는 대표 주자다. 독일은 1985년 일찍이 형법을 개정해 특정 민족ㆍ종교 집단을 모욕하고 이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경우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형법 130조)하고 있다. 특히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피해를 축소하는 표현을 전격 금지한 ‘홀로코스트 부인 금지법’은 이후 독일을 넘어 유럽연합(EU) 13개국 등 세계 21개국에서 발효됐다.

프랑스는 특히 종교 관련 표현에 대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는 당시 후속 조치로 파리, 니스, 리옹 외곽의 극단주의 혐의가 있는 모스크(이슬람 사원)들을 연달아 폐쇄했다. 혐오 표현은 아니지만 공공장소나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히잡과 십자가 문양 장식, 터번 착용도 금지한다.

EU는 이런 전통을 발판 삼아 2008년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대응 행동에 대한 기본 결정’을 채택해 회원국들에 혐오 발언 금지를 의무화했다. 금지 수준까지는 규제하지 않아 강제성은 약한 편이나 EU는 줄이어 유사 결정을 내리고 있다. 지난 5월 EU 집행위원회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기업들과 헤이트스피치(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 발언) 금지 행동규약(COC)에 합의했다. 규약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불법 헤이트스피치 표현물이 해당 SNS에 게재될 경우 24시간 이내에 삭제하고 접근을 막아야 한다. 베라 주로바 EU 법무ㆍ소비자 담당 집행위원은 “자유 언론의 공간이 돼야 할 인터넷에 폭력과 증오를 부추기는 선동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고 규약 취지를 설명했다.

돌아서는 ‘최후의 보루’ 국가들

표현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던 국가들도 극단주의 테러 등 폭력에 노출되면서 황급히 노선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2월 수도 코펜하겐에서 유대인 겨냥 총격테러를 경험한 덴마크는 올해 초 살인이나 폭력, 일부다처제 등 위법 행위를 방조하는 종교적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이어 반민주주의적 견해를 표출하는 성직자에 대해서도 입국 금지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표현 자유의 수호자’로 불리던 덴마크는 과거 냉전 중에도 공산당의 정치 활동이 보장될 만큼 다양한 이념 표출을 허용한 터라 이번 결정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덴마크가 ‘위법행위’를 법적 저지선으로 삼았다면 영국은 표현 금지 대상을 더욱 폭넓게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지난 5월 폭력 행위와 무관한 극단주의 단체라 하더라도 설립을 금하고 지방자치단체 권한으로 혐오 조장에 사용되는 장소를 폐쇄 가능한 ‘테러방지법’ 추진계획을 밝혔다. 이 역시 2013년 5월 군악대원인 리 릭비 상병이 런던 대로변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 2명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데에 따른 결과다.

영국은 그 외에도 성적 취향, 민족 또는 종교적 혐오 조장 발언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이에 20일(현지시간)에는 영국민 4만여명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파 캠페인을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 전 영국독립당 대표를 민족ㆍ종교 혐오 선동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표현 제한해도 폭력 증가…딜레마 여전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을 긍정할 수만 없는 이유는 논리적 결함 탓이 가장 크다. 포린폴리시는 “무엇이 혐오 발언이고 무엇이 정당한 비판인지 가름할 측정법이라도 있나”라며 “중요한 질문들에 어색한 답변들만 도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영국 캐머런 정권은 테러 방지 법안을 내놓기 전 ‘극단주의’를 정의하기 위해 수십개의 임시안을 놓고 약 8개월간 논쟁을 벌였다. 정부는 결국 “민주주의, 법치, 개인의 자유, 상호 존중, 관용 등 영국의 기본 가치에 반하는 언어적 표현 또는 행위”라는 정의를 채택했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제한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독일 정보기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독일 내 극우 단체가 전년 대비 500개나 늘었으며, 극우파에 의한 폭력 사건 역시 42% 증가했다. 미국계 비정부기구(NGO) 휴먼라이츠퍼스트는 프랑스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유대인 혐오 범죄가 2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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