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율 부족… 어정쩡 입장 견지, 與 지도부 공론화 나서자 허둥
美·中 양측 압박도 임계점 달해… 전문가들도 해법 싸고 의견 분분
국방 당국을 비롯한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정책이 도전받고 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전략적 모호성’에서 흔들림이 없지만 당장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사드 배치 쪽에 무게를 둔 공론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자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국방부 주변에서도 “언제까지 모호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국방부가 자초한 ‘전략적 모호성’의 후폭풍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이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주장한다. 사드를 배치하자니 중국의 반발과 보복이 두렵고, 배치를 거부하자니 한미동맹에 금이 가기 때문에 선택한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사드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기를 먼저 깬 것은 국방부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사드 배치와 관련,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국방부로서는 현재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그간 “사드 배치에 관해 어떠한 검토도 협의도 결정도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표현은 꺼내지 않았다. 모호성에 따른 이득을 누리기 위해서다. 미국이 한국, 이스라엘 등 우방국에 실제 핵무기를 배치했는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고수하면서 핵우산 효과를 극대화해 온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한 장관의 발언으로 스텝이 꼬였다. 전략적 모호성을 직접 거론하는 순간,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미국에 확답을 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난처한 처지를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다.
국방부의 실책은 정부 내 조율이 부족한 탓도 크다. 사드 배치는 다른 무기와 달리 대북 안보와 주변국 외교, 국내 여론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이슈지만 그 동안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그늘에 안주하면서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 새누리당이 15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 사드 문제를 공식 의제로 올리겠다고 선언하자 정부는 뒤늦게 부처간 입장 조율에 착수하는 등 허둥대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택하기 어려운 ‘공론화’와 ‘모호성 유지’
선택하기 어려운 ‘공론화’와 ‘모호성 유지’
문제는 사드에 대한 미중 양측의 압박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미국 측은 지난해부터 집요하게 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심지어 “한국 국방부가 결정을 내렸다”는 등의 연막전술까지 쓰고 있다. 이에 중국은 지난달 국방장관회담에서 의제에도 없던 사드 문제를 꺼내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해법도 갈려 있다. 우선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자금처럼 눈치만 보다가는 이쪽, 저쪽 다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정부가 선제적으로 사드 배치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은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한 무기라는 점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그래야 중국도, 미국도 모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중국이 일관되게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데 우리가 먼저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사드 배치를 확정하면 그 때 가서 중국 측의 이해를 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중국과의 소통과 교감이 우선돼야 비로소 사드 배치 문제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THAAD
고도 40~150㎞에서 적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체계. 적이 발사한 미사일이 포물선 궤적을 그리다 정점을 지나 떨어지는 단계에서 상층부를 방어하기 때문에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고 부른다. THAAD보다 낮은 고도에서는 PAC-3와 PAC-2, 높은 고도에서는 SM-3 미사일이 요격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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