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기자

등록 : 2016.12.26 04:40
수정 : 2017.06.08 17:05

“10년째 임용고시 실패… 저는 루저입니까?”

[오은영의 화해] "당신이 행복하고 가치있게 느껴졌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등록 : 2016.12.26 04:40
수정 : 2017.06.08 17:05

부모가 설계한 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면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을 루저로 만든다.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저는 무직입니다. 지난 10년간 임용고시를 붙들고 씨름했지만 결국 실패했죠. 다른 일을 하면 좋을 텐데, 저희 부모님은 남들 보기 번듯한 직업이 아니면 용납을 안 하세요.좀 더 해 봐라, 더 노력해 봐라, 늘 그러실 뿐이죠. 10년을 해서 안 됐는데 어떻게 더 노력을 할 수가 있습니까? 가끔 뉴스를 보면서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토로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엔 촛불집회를 보면서 한 마디 했더니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차갑게 쏘아붙이시더군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분 모두요. “네 할 일이나 잘해라”, “시험 합격이 우선이다”, 이런 말들로 저를 무시하실 때마다 저 자신이 사회에 기생하는 버러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높았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많이 졌던 여동생과 달리 저에게 거는 기대가 컸죠. 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기대치가 높았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견디기 힘든 냉대가 돌아왔어요 여동생에게만 관대한 어머니의 모습에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특목고에 진학했지만, 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수능 역시 결과가 좋지 않았고요. 명문대 진학에 실패하자 대입 원서 쓰는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퉜습니다. 내 실패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부모의 불화까지 보고 있자니 일어나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머뭇대고 부모님 눈치를 보게 되었죠.

아버지의 강권으로 사범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또 다툴까봐 그저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척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어 학원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뜻밖에 재미있고 보람찼습니다. 낮에는 시험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학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6년간, 저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다 자부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로부터 받는 기쁨이 컸습니다. ‘임용시험을 봐야겠다’ 처음으로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힘들었지만,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아이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좋아요’, ‘선생님 멋있어요’, ‘선생님 재밌어요’, ‘선생님 똑똑해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부모로부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저의 일을 ‘알바’라고 깎아내리며 ‘언제까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 거냐’고 비난했습니다. 너무 큰 상처를 받았죠. 임용시험에 떨어지면 학원강사를 하다 학원을 운영해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그랬다간 평생 무시당하며 살 게 뻔했습니다. 장남이 잘 돼야 집안이 잘 풀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학원은 안 되겠다, 스스로 포기하게 됐죠.

제 사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던 부모님은 당분간 경제적 지원을 해줄 테니 집에 와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했습니다. 제 자존감을 높여주고 저 스스로를 너무 근사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줬던 아이들을 떠나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공부만 하기로 마음 먹고 임용고시에 전념했는데 결과는 불합격. 나는 전공과목에 대한 적성과 이해가 부족하다, 인정하고 임용시험을 접기로 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준비했던 시험을 접자니 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물론 허탈한 마음이 많이 들었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 각종 공무원 시험과 취업시험에 닥치는 대로 응시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현재는 지칠 대로 지쳐 책 한 장 보기도 버거운 상황입니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지속되고 있는데, 부모님은 제가 노력하지도 않고 자신감도 없다고 비난하십니다. 그러지 않아도 제 자신이 한심해 죽겠는데 부모님은 제가 하는 말들이 하찮은지 항상 무시하시죠.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시험에 합격하든가 아니면 나가 혼자 살라’고 하는데, 모아놓은 돈 한 푼 없는 제가 당장 나가 살 수 없다는 거 알면서 그러시는 걸 볼 때면 너무 비참해집니다. 아버지는 다시 임용시험을 보라고 하지만, 저는 제 능력 밖의 시험을 보고 또 다시 실패해서 좌절하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선생님, 제가 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게 그렇게 한심한 건가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부모님은 시험 결과, 괜찮은 직업으로만 저를 인정하려 합니다. 살면서 부모님께 제대로 된 칭찬을 받아본 게 딱 한 번뿐이었어요. 중학교 시절 전교 1등을 했을 때였죠. 저는 제가 교사가, 공무원이 못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되면 좋겠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교사와 공무원이 될 순 없잖아요. 부모님의 기대로부터 벗어나면서 동시에 부모님께 저 자체를 인정받고 사는 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인 겁니까? 저 자신이 벌레처럼 작고 하찮게 느껴집니다. 이런 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황지훈씨, 가명, 32세)

“공부, 공부, 공부…. 대한민국의 너무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학대하는 데 쓰는 구호죠. 학습으로만 자녀와 소통해왔던 부모가 결국 어떻게 관계를 망치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공부가 무엇인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잘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부모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공부는 무조건 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식에게 고통을 주는 것, 이걸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지훈씨의 사연은 학습으로만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는 부모의 위험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훈씨가 느끼는 이 심각한 고통을 아마 부모님은 짐작도 못할 겁니다. 본인들은 너무 잘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만 생각할 거예요. 나이 서른이 넘도록 기회를 주고 뒷바라지를 해줬으니까요. ‘밥 먹이고, 책 사주고, 과외 시켜주고, 안 해준 게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실은 가장 큰 문제인데 말이죠.

부모가 자녀와 학습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기는 초등 유아기까지입니다. 아이와 기차놀이를 하면서 ‘이건 트레인이야’라고 영어를 가르치고, ‘기차는 길지’ 하며 수학을 가르칩니다. 놀면서도 호시탐탐 가르칩니다. 놀이 중간중간 인지적 자극을 주는 게 왜 나쁘겠습니까. 아이도 즐겁게 넙죽넙죽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고요. 하지만 아이는 그저 부모와 재밌게 웃고 싶었던 겁니다. 그마저도 초등 저학년에서 끝나지요. 학습은 할수록 즐거운 게 아닙니다. 놀이처럼 방식을 맘대로 바꿀 수도 없죠. 정해진 대로 해서 정답을 찾아야 해요. 그러니 매번 잘했다고 칭찬만 할 수도 없어요. 틀렸다고 수정을 해줄 수밖에 없는 게 공부인데, 갈수록 태산이죠.

공부로만 부모와 대화하고 상호작용한 자녀는 이 시기가 오면 부모와 함께 있는 게 더 이상 기쁘지도, 활기차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이제 부모와 소통할 다른 방법은 전혀 없고 할 줄도 모르죠. 공부로만 소통하고, 인정받고, 대화하고,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인구의 1%, 더 엄밀하게는 0.1%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전 국민이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요. 공부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겁니다. 어릴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공부의 과정을 인정해주지 않고 결과만 인정하는 부모의 무서운 결말이 지훈씨가 겪는 이런 고통이에요. 연세대 들어간 자녀한테 서울대 못 갔다고 비난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부모가 강요하면 아이는 공부를 잘하게 될까요. 아니라는 데 비극이 있죠. 부모는 공부하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아이는 막상 그 중요한 공부를 하려고 하면 마치 공부가 목덜미를 물어뜯는 맹수같이 느껴집니다. 이제 공부는 단지 공부가 아니에요. 내 인생을 뒤흔들고, 이걸 생각하기만 하면 무시무시하고 부담스럽습니다. 넘지 못할 산처럼 무력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렇게 되면 잘할 수 있었던 사람도 공부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지훈씨는 학습능력이 꽤 좋았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한 겁니다. 지훈씨는 학습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이렇게 되면 한 줄도 못 읽습니다. 인생의 중심축이라 할 부모와의 관계는 붕괴되고, 잘할 수 있던 사람도 잘하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 우를 한국의 부모들은 자꾸 범하고 있는 겁니다.

지훈씨의 부모님이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안타깝지만 그게 그분들의 사랑이었어요. 하지만 심맹(mind blindness)처럼 아들의 마음을 못 본 겁니다. 성인이 된 아들과도 성과와 결과로만 소통하려는 부모.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부모님은 지훈씨가 교사라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거예요. 교사는 숭고하고 가치 있는 직업이니까요. 하지만 그 사랑은 지훈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보지를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사랑할수록 고통을 주는 그런 사랑인 겁니다.

부모님이 이제라도 지훈씨의 마음을 이해해주면 좋겠지만, 이제 성인이니까 반드시 그게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부모의 사과와 위로가 여의치 않다면, 지훈씨가 경험했던 행복의 토대를 스스로 확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좋아요’, ‘선생님 훌륭해요’ 이걸 넓혀가는 수밖에 없어요. 안타깝지만, 이제는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해요. 학원 선생님이 뭐가 어떻습니까.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르친다는 행위가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좋은 선생님은 어떤 장소에서도 귀한 가르침을 줄 수 있어요. 이제는 부모가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훈씨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독립입니다. 작은 학원의 기간제 교사라도 괜찮습니다. 지훈씨는 가르치는 과정에서 기쁨과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당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니까요. 아이들은 정직하니까, 아이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 사람인 거예요. 교원 임용이 됐느냐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좀더 안정적이냐 아니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너무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지훈씨. 이제 당신의 길을 가야 해요. 아이들이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자리로 돌아가세요. 가서 원하는 일을 하세요. 그것이 지훈씨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1차감정으로 자식과 진솔하게 소통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아이들을 모욕하고 비난하고 빈정거리는 방식으로 표출하며 가장 사랑하는 약자인 소중한 아이에게 상처를 줍니다. 지훈씨 부모님이 ‘우리는 아픈 동생을 돌보기에도 버겁다. 너한테 이렇게 하는 건 너를 더 많이 믿고 너의 학업적 능력을 인정해서야’라고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봐’라는 건 부모의 불안입니다. 그 불안으로 자녀를 모욕하는 거죠.

지훈씨. 학습의 근본적은 목적은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내가 해낼 수 있네’라는 자기효능감과 자기신뢰감을 획득해 가는 것입니다. 열 개 중 하나를 맞히더라도 말이죠. 지훈씨는 여기에 문제가 있었어요. 100점에서 50점으로 뚝 떨어졌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게 공부입니다. 원인을 찾아서 수정하는 것, 그게 진짜 공부인 거예요. 학습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사고력 증진 과정입니다. 결과만 중시하면 자기신뢰감도, 확신감도 못 얻고, 오류를 수정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사고력 증진도 이루지 못합니다. 다시 선생님의 자리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이걸 가르쳐 주세요. 공부를 통해 최선을 다해보는 걸 배움으로써 인생의 좌절과 고비를 겪어낼 힘을 길러 주는 것, 그것도 가르쳐 주세요. 꼴등을 하더라도 ‘내가 이번에는 새벽에 동트는 걸 좀 봤네’ 하며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세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할 때 당신의 상처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지훈씨는 중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수학시험 점수를 기억하나요? 아마 못하겠죠. 그렇다면 밤 늦도록 공부해본 기억은 나나요? 그건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점수가 아니라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꼴등을 하더라도 한 문제나마 끝까지 푼 아이를 격려해주세요. “야, 너 그게 가치 있는 거다. 넌 잘 살아갈 거야’ 칭찬해주세요. 학생들에게 다시 돌아가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하고 소중한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느낄 때 마음이 풍요롭고 단단해질 거예요. 그 후 시험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때 그때 다시 시도해도 늦지 않습니다.”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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