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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설명회로… 교육현장, 대수술 앞두고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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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설명회로… 교육현장, 대수술 앞두고 ‘혼돈’

입력
2017.06.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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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뭘 공부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고1 “수능 망쳐도.. 제2의 기회는 없나요”

중2 “특목고 준비 물거품 되나요”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기 지역 중3 학부모 김모(42)씨는 최근 ‘융합과학’ 관련 도서를 사모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당장 내년 고1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돼 문ㆍ이과 상관없이 통합과학, 통합사회를 배우지만 바뀌는 과정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현재 중3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2021학년도 수능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고교 성취평가제(내신 절대평가제) 적용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김씨는 25일 “내가 수능 첫 세대인 94학번인데, 당시 대대적으로 대입 체계가 바뀌며 많은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탓에 불안한 마음이 크다”며 “수능이나 대입 환경이 완전히 불투명한 상황인데 학교 선생님도, 교육청에서도 ‘아직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해 스스로 대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ㆍ고등학생들은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입시 및 교육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되면서 변화의 경계선에 낀 학생들이 겪어야 할 충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 내신 절대평가, 교육과정 개편, 자율형사립고ㆍ외국어고 폐지 등 하나 하나가 파괴력이 만만치 않는 사안들이다. 대부분 새로운 정책의 첫 적용 대상이 될 현재의 중3은 물론이고 자칫 헛발을 내디뎠다가는 재기의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는 고1, 그리고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고입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처지에 몰린 중2까지 학년별로 고민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특히 대선 전 공약으로는 큰 그림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정부 출범 후에는 아직 이렇다 할 세부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틈을 타 반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어 혼선은 가중되는 양상이다. 당장 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은 물론 현직 교사들마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라며 “정확한 지침과 충격을 누그러뜨릴 완충장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할 정도다.

현재 학년별 교육정책 변화 관심사
현재 학년별 교육정책 변화 관심사

2021 수능 개편ㆍ2015 개정 교육과정 첫 대상 된 중3

가장 혼란스러운 건 문재인 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교육개혁 정책 대부분의 첫 적용 대상이 된 중3 학생들과 학부모다. 교육 현장에서 처음 시도되는 정책들이 여럿인 데다 2015 개정 교육과정까지 처음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진학ㆍ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중3 학생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서울 지역 중3 김모(15)양은 “우리 중3은 초등학생 때는 2007 교육과정을, 중학교 때는 2011 교육과정을 거쳤고 고1부터는 또 새로운 교육과정을 따르게 되는 ‘실험학년’”이라며 “다양한 재능을 찾도록 선택과목이 늘어난다고 하는 만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직 정해진 게 없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와 고교 성취평가제로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대학별 고사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일부 대학 입학처는 대학별 고사 도입의 불가피성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3 학부모 이모(47)씨는 “구술면접이나 적성고사 등 대학마다 다른 인재상을 기준으로 하는 시험은 출제 경향 예측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 학업 부담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사들도 명확한 정부 지침이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교육업체 천재교육이 지난해 9월 중학생 1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절반 가까이(49%)가 진로 관련 정보를 학교에서 얻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서울 지역 중3 담임교사 이모(29)씨는 “주요 과목 교사들이 2015 교육과정에 대한 대략적 연수를 받고 정부의 교육정책 개편 방안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지침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민을 많이 털어놓지만 별다른 조언을 못해 민망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7, 8월 중 수능 개편안이 마련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장관 임명이 늦어지는 등 일정도 불투명하다.

결국 학생들은 정보력이 좋다고 입 소문난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A 대형교육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5월 50건에 그쳤던 서울 목동 지점의 중3 대상 입시컨설팅 접수 문의가 올 5월에는 80여건으로 급증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7, 8월쯤 시작되는 중3 대상 겨울 기숙학원 접수 문의도 벌써 들어오고 있는 상태”라며 “확실한 게 없으니 ‘빨리 주요과목 1등급 실력부터 쌓아놓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수’가 어려워진 막다른 세대 고1

고1 아들을 둔 학부모 송모(50)씨는 지난달 말 대형교육업체가 주최한 2020학년도 대입설명회에 다녀온 후로 근심이 늘었다. 고교 진학 후 아들의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 일찌감치 ‘N수(여러 차례 수능을 치르는 일)’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당장 재수부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현재 중3이 입시를 치르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큰 변화가 예고(올 7, 8월 발표 예정)되면서, 현행 입시제도의 마지막 적용 대상이 된 고1은 재수 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송씨는 “아이를 7살에 학교에 입학시킨 걸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 등 교육정책의 대변화로 중3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만큼이나 고1들의 한숨도 깊다. 2020학년도 수능과 대입 전형에서 원치 않는 결과로 재수를 하게 될 경우 새로운 교과서(2015 개정 교육과정)로 공부하고 뒤바뀐 수능과 대입전형(수능 절대평가, 대입 논술 폐지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공약대로 학생부교과ㆍ학생부종합ㆍ수능으로 대입 전형이 간소화하고 수시와 정시가 일원화 되면 N수생들의 선택 폭은 크게 좁아진다.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 중 N수생은 매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17학년도 수능 원서접수자 가운데 고등학교를 이미 졸업한 학생(검정고시 포함) 비율은 전체의 24.2%(14만6,600명)에 달한다. 하지만 교육과정이 바뀌는 해에는 그 수가 급감하는 추이를 보인다. 수능 등급제가 시작된 2008학년도 수능에서 원서접수자 중 고교 졸업생이 13만8,300명으로 전년보다 16.5%(2만5,200명)나 줄었던 게 대표적이다. 고1 최모(16)양은 “만약 수능을 망쳐도 새로운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것보다 성적이 잘 나오리란 보장이 없기에 재수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부 전형 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겪는 부담도 크다. 보통 수시모집에서 대학들은 3학년 1학기까지의 학생부 성적만을 반영, 학생들은 수능 직후 치러지는 3학년 2학기 내신은 상대적으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N수생 수시에서는 상당수 대학들이 3학년 2학기까지의 성적까지 반영하는 데다, 학생부 비중이 크게 늘면 수능과 내신 모두에 매달려야 한다. 고1 진모(16)군은 “바뀌는 교육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고1의 경우 ‘제2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할 수 있다”며 “지금의 고등학생을 위한 별도의 전형이나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기회는 한 번 뿐’이라는 압박에 사교육 업체를 기웃거리는 고1들도 많다. 대형교육업체 B사 관계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에 대한 고1 수강생 인원이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늘었다”며 “2020학년도 수능에서 단 번에 점수를 잘 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수능 올인’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자사고ㆍ외고 선택 기로에 선 중2

“아이가 자기 입으로 자사고 못 가면 공부할 맛이 안 날 것 같다고 하는데 요새처럼 심란한 적이 없네요.”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자사고ㆍ외고 폐지 논의에 중2 아들(15)을 둔 학부모 김종하(43)씨의 고민도 깊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서울의 C 자사고를 목표로 내신 관리는 물론 수학1 등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수학 선행학습을 시켜왔던 김씨다. 그는 “차라리 일반고를 간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경시대회 같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대비를 하는 게 나은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며 “일단 하던 대로 열심히 하고 있으란 말 밖에 못하고 있어 무기력한 부모가 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일찌감치 자사고ㆍ외고를 염두에 뒀던 중2와 학부모들은 최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자사고 등을 폐지해 고교 서열화를 없애겠다는 새 정부의 큰 그림만 제시됐을 뿐 전환 시기나 방식 등 세부적인 정책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찬반 공방만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ㆍ외고가 폐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중3이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는 그 지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중2 학생들의 경우 자사고ㆍ외고 폐지의 첫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그때까지도 자사고ㆍ외고가 남아있더라도 입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인지를 두고는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 교육업체 관계자는 “설령 추후 일반고로 전환된다 해도 명성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폐지 정책과 무관하게 명문 자사고ㆍ외고 진학 전략을 굳이 수정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교육업체 간부는 “학벌사회에서 본인이 졸업할 때까지는 자사고ㆍ외고 지위가 유지되더라도 이후에 일반고로 전환이 되면 메리트가 크게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예측했다.

이러다 보니, 자사고나 외고 입시를 준비해온 중2 학생들 중에선 유학 쪽으로 방향 선회를 고민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아들이 자사고 진학을 희망해왔다는 학부모 조모(47)씨는 “면학 분위기가 좋은 자사고를 보내기 위해 몇 년간 준비를 해왔는데 일률적으로 폐지를 한다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무리를 해서 유학을 보내는 방안도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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