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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차별 조장하는 문구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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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차별 조장하는 문구업체들

입력
2017.09.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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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ㆍ인권단체들 인권위에 진정

4개 업체 상품ㆍ광고 51개 적발

“기업 불공정거래ㆍ인권 침해” 비판

“물의를 일으켜 대단히 죄송합니다.”

차별과 입시경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 문구업체의 볼펜ㆍ연필 파우치 상품.
차별과 입시경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 문구업체의 볼펜ㆍ연필 파우치 상품.

2015년 2월 한 문구업체의 대표 A씨는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자사 출시 제품 중 일부 제품의 디자인이 성별ㆍ학력ㆍ직업 등과 관련한 인권침해 요소를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직후였다. 실제 당시 이 업체의 온ㆍ오프라인 매장에선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어머! 얼굴이 고우면 공부 안 해도 돼요’, ‘열공해서 성공하면 여자들이 매달린다’는 문구로 디자인한 공책 등이 팔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노동을 향한 심각한 비하와 조롱을 통해 학력과 학벌의 환상을 조장하고 있다”, “학습 목적을 결혼으로 단순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A씨는 “의도와 다르게 해당 제품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전달된다는 점에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린다”며 해당 제품에 대한 판매를 중지했다. 당시 “A사의 차별ㆍ입시 조장 상품 판매를 중단하도록 권고해달라”는 학벌없는사회를위한광주시민모임(학벌없는사회)의 진정을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는 A사가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의 상품을 회수한 점 등을 감안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인 19일, 학벌없는사회는 광주여성민우회 등 4개 단체와 공동으로 A사를 비롯한 문구업체 4곳에 대해 또다시 차별을 조장하는 상품 판매를 중단하도록 권고해달라고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A사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A사 등 문구전문업체들이 차별과 입시를 조장하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ㆍ판매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이 단체들은 최근 실태 조사에 나서 A사 등이 입시와 차별을 부추기는 상품 51개를 온ㆍ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업체들이 판매하는 필통과 공책 등엔 ‘1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아내)의 직업이 바뀐다’, ‘어머! 그 성적으로 연애는 어림없을 걸’, ‘열공만이 살 길이다’ 등의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벌없는사회는 “공부 시간과 얼굴, 직업의 상관관계는 과학적ㆍ통계적으로 설명된 바가 없는데도, 마치 공부를 하면 좋은 직업과 예쁜 얼굴의 아내를 가진다는 것처럼 광고한 것은 거짓・과장성이 인정되는 불공정거래 행위”라며 “특히 남성은 좋은 직업, 아내는 예쁜 얼굴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키고, 과도한 입시경쟁을 당연한 현실로 전제하여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유엔인권이사회는 2011년 '프레임워크'를 검토ㆍ발표하면서 ‘기업은 모든 해당 법률을 준수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가진다’고 명시했다”며 “해당 업체는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에 법률에 의한 제한 조치로 국가인권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정조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광주인권지기 활짝 관계자는 “이러한 행위는 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차별행위”라며 “이번 진정서 제출을 시작으로 1인 시위와 캠페인ㆍ패러디물 제작과 전시ㆍ민사소송ㆍ불매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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